서울, 어느 평론가와 시인과
고형렬
아내가 많이 아프다는 어느 평론가와
오십대 들어선 어느 구리 시인과
시청역 11번 출구 이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했다
커피를 마시는 셋은 가까운 시간에서 보면
기억 같아 보였다
정말 슬프고 추운 사람은 깃이 짧은 점퍼와
목이 짧은 양말을 신은
그 평론가였다
시인은 오리털 속으로 자신을 집어넣고 있고
나는 내가 지나온 그 오십대의
두 사람을 대문 앞에서 보내는 것 같았다
누구나 저 지하 입구로 들어가면
행방불명이 된다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살 작정이지만 어서 오십대를 지나가시게
서울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신월동 근처의 삶과 안양천 너머의 한강 찬바람과
비교할 수 있을까
혼자 써야 하는 글이 너무 어렵고 아파져서
이 서울의 빌딩 그늘은 춥다
입술이 터진 평론가를 좌석버스로 혼자 보내고
그늘진 서소문로 길바닥의 찬바람을 피해
둘은 지하로 뛰어내려갔다
가장 후배가 성산대교 바람 속을 아직도
건너가고 있을까
서울을 찾아오던 젊은 날의 꽃 같은 시절들을
복기하고 있을까 복기하지 않고 눈감고 있을까
시인은 을지로 입구에서 내리고
나는 왕십리 환승역을 향해 달려갔다
서풍은 꽃가지에서 벌써 헤어지기 시작했다
길 없는 신인新人들처럼 춥고 쓸쓸한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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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2017. 3-4월호 <신작특집> 에서
* 고형렬/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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