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내가 사는 먼 곳 지상전철이 지나갈 때/ 고형렬

검지 정숙자 2017. 5. 25. 17:49

 

 

    내가 사는 먼 곳 지상전철이 지나갈 때

 

    고형렬

 

 

  모든 것을 중지하고

 

  자서전을 쓰듯 지상 전철이 지나가는

  레일 소리가 절실하다

 

  그 소리는 내 뼈의 영혼 속으로 침잠한다

 

  먼 아침마다 문산에서 이슬을 털며 떠나온 전철

  감기 마스크와 이국 여자와

  학생 몇을 태우고

  떠나올 때 마음은 물론 변함없지만

 

  열차도 돌아갈 수 없는 한때를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열차는

  양평에서 중앙경의선이 되어

  저 삼십 대의 저녁 문산으로 돌아간다

 

  좋아라 차분한 발진 시작하면 야산의 능선도 따라

  울릴 때도 있다

  모두 우울하고 슬픈 날만 있지 않았던

  중앙선과 경의선의 연결

 

  오늘 그 선 하나의 짐이

  실내에 환한 등을 달고 가는 나의 밤 열한 시 반

  이마에 라이트를 켜고

  마지막 오늘의 수도를 관통해온

  여덟 량의 은색 박스 속에

 

  나의 꿈은 벌써 길도 없이 카시오페이아 하늘에

  닿고 말았다 그때, 닿지 말 것을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그림만 그리고 있었나

  그 어떤 시간만

  나에겐 과거도 미래도 오늘도 아니다

 

  나라고 하는 어느 당자當者는 일요일 오늘

  그 오전

  그해 나뭇가지를 손질하다가 그 레일 소리를

  그만 심장 속으로 흘려보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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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7. 3-4월호 <신작특집> 에서

  * 고형렬/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