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씨앗의 노래/ 차옥혜

검지 정숙자 2017. 5. 20. 00:23

 

 

    씨앗의 노래

 

     차옥혜

 

 

  그해 겨울

  기근이 전염병처럼 퍼졌다

  전쟁으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잃은 영희는

  시아버지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간신히 묽은 죽을 쑤어 밥상을 차렸다

  시아버지는 단식으로 속병을 고친다며

  식사를 거부하고 물만 마셨다

  영희가 매일 수시로 아무리 죽을 권해도

  시아버지는 한사코 막무가내였다

 

  봄이 오자 뼈만 남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신을 염하고 시아버지의 요를 거두니

  씨앗들이 깔려있었다

  볍씨, 콩, 상추, 아욱, 무, 배추, 조……

  장례를 마치고 자식들과 고향을 떠나려던

  영희는 통곡하며 씨앗을 끌어안았다

  생명을, 희망을, 미래를 껴안았다

 

  아버지 저도

  사람 씨앗을 위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곡식 씨앗을 지키겠습니다

  아버지가 목숨으로 지킨 씨앗

  아버지의 몸이고 정신인 씨앗

  조상과 나와 자식이 씨앗 속에서

  한 몸입니다

  우리는 씨앗으로

  함께 영원합니다

 

  영희는 죽을힘을 다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걸핏하면 울던 울보 영희는

  그 이후 절대 울지 않았다

 

  씨앗이 밀고 가는 세상

  씨앗이 먹이는 세상

  씨앗이 키우는 세상

  씨앗은 생명이다 목숨이다 넋이다

  씨앗은 아버지다 어머니다 자식이다

 

  초록 벌판에

  종일 일하며 부르는 영희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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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2017-여름호 <시에 시>에서

  * 차옥혜/ 전북 전주 출생, 1984년『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깊고 먼 그 이름』『숲 거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