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한용국_사이를 꿈꾸는 겹의 향연들(발췌)/ 옹이와 무늬 : 서영택

검지 정숙자 2017. 5. 19. 23:51

 

 

    옹이와 무늬

 

    서영택

 

 

  우리집 재봉틀은 늘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3살 위인 형과 어릴 때 체격

이 비슷하였다 어머니가 옷을 똑같이 지어 입혀서 쌍둥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밤은 깊어가고 등잔불 아래 낡은 그림자를 꿰매고 있는 어머

니, 전쟁 중에는 재봉틀을 가지고 피난길에 나섰다 그 때는 큰 형을 데리

고 재봉틀을 이고 바느질을 갔다고 한다 난리 통에 한 끼를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 무명옷은 넘어지면 무릎이 찢어지는데 흥부네 옷처럼 누비고 누벼

서 옹이처럼 단단해졌다

 

  날마다 꿰매지거나 해져 닳아버린 시간들

  어두운 밤길은 어느 무늬를 숨겨놓았을까

  겹쳐진 기억들이 빛난다

 

  나비 무늬로 피어날까

  목단 꽃으로 환생할까

  지금도 내 머리맡에서 가끔 돌아가는 재봉틀

 

  어머니는 재봉틀 앞에서 돌아가셨다

      -전문-

 

 

    사이를 꿈꾸는겹의 향연들(발췌)_ 한용국/ 시인

   시「옹이와 무늬」는 어머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을 '재봉틀'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는 재봉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두 형제를 키웠다. 그 재봉틀은 두 형제를 정서적으로 단단하게 결속시켜 주었고, 난리통에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 주었다. 재봉틀과 함께 한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고 자란 두 형제의 삶 또한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해졌다. 재봉틀은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한 가정의 삶을 단단하게 박음질해 준 것이다. 이제 시인도 어느덧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날마다 꿰매지거나 해져 닳아버린 시간들'은 어머니의 삶에 덧대어보는 시인의 시간일 것이다. 때로 홀로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만히 떠올려보는 재봉틀의 기억은 어머니의 시간과 시인의 시간에 아름다운 무늬를 박음질해 놓았다. '나비 무늬로 피어날까/ 목단 꽃으로 환생할까'에서 보이듯 이제 시인에게도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머리맡에서 가끔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어머니의 삶과 시인의 삶을 겹쳐 '나비 무늬, 목단 무늬'를 수놓은 재봉틀은 삶인 동시에 죽음이며, 둘 모두에 고귀한 가치를 부여하는 무엇이다. 하지만 죽음은 깊은 아픔을 거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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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7-여름호 <어느 별에서 왔니> 에서

  * 서영택/ 2011년 『시산맥』으로 등단, 시집『현동 381번지』

  * 한용국/ 200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