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박성현_'미학적 불편' 혹은 공백의 끝없는 순환(발췌)/ 걷는다 빛났다 : 이성미

검지 정숙자 2017. 5. 19. 18:02

 

 

    걷는다

   빛났다

 

    이성미

 

 

  걸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왼발을 보며 오른발을, 오

른발을 보며 왼발을 번갈아서 보고 있습니다. 누가?라고 묻지 않고

 

  걷는 일

  걷는다는 생각 없이

  걷는 일

 

  빛났다

  가끔

  빛나는 걸 까먹지 않고 빛나는 것이 있구나

  그럴 때

  웃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열었다

 

  손가락

  흰 콩

 

  부등식

 

  딱따구리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리면 좋겠어

    -전문-

 

 

   '미학적 불편' 혹은 공백의 끝없는 순환(발췌)_ 박성현

  그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는다. 왼발을 내딛으면 오른발이 불쑥 튀어나오고, 다시 오른발을 가로질러 왼발이 땅을 딛는다. 그러한 규칙은 생래적이지만 아무래도 그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특이하게도 그는 '걸음'을 육체의 효과가 아닌, '걷는다'라는 동사 그 자체로 사유하기 때문, 더욱이 그는 걸음의 주체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 보폭의 분할은 '주체의 고유한 특성'이지만 그는 그것의 '행위 주체'에 대해서는 살피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오로지 극도로 추상화된 '걸음'일 뿐이다. 원래 걸음은 육체의 총체적 작용으로 이뤄지는데, 그는 그 각각을 따로 떼어내면서 집요하게 확장한다. 만일 서사를 거칠게 다루는 프랑스 영화감독이라면 이 이상한 사건의 나타남을 이렇게 묘사할 것이다. '걸음과 다리의 분리' 혹은 '기의가 사라진 기표의 더미들.' 물론 표현은 감독의 몫이다./ 시인은 사건의 예측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이른 바, 개연성이라는 문학의 내적 논리와 필연에 대한 거부. 따라서 위 시의 첫 문장    "걸었습니다. 무엇이? 라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왼발을 보며 오른발을, 오른발을 보며 왼발을 번갈아서 보고 있습니다. 누가? 라고 묻지 않고"   이 암시하는 것은, 자신의 시선이 정확히 전체가 아닌 분할되고 파편화된 퍼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 그는 걸음과 다리, 육체를 찢어버림으로써 주체의 각각을 계열화한다. '마네킹처럼 분리된 육체' 그리고 그것의 '독자적인 연장'은 '무엇'과 '개별'이 완전히 생략된 '이탈적 운동'이다./ 다시, 지금 '무엇/ 누가'는 걷고 있다. "걷는다는 생각 없이/ 걷는" 것이다. 이미지로 현상한다면, 이미 통사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나버린 '탈-통사적 질료' 정도가 되겠다. 그것은 "언어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질료", 곧 '원시 언어체계에 해당하는 내적 독백'이다(들뢰즈). 문법이 없는 '문장'이 가능한 것처럼, 이 내적 독백도 충분히 형상될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입속을 맴도는 언어들은 문법화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의 '기능-세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비유한다: "빛났다/ 가끔/ 빛나는 걸 까먹지 않고 빛나는 것이 있구나"라고./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는 자신의 언어를 '탈-통사적 질료'로 활용하고, 의미로써 산출되기 이전의 '원-의미'를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그의 시를 읽으면서 모호하지만 날카로운 '불편'을 느끼는 이유다. "웃는 것은 잊지 않았다"와 "열었다" 사이의 공백을 우리는 어떤 언어로 채울 수 있을지 아득할 뿐이다. 또한 "열었다"와 "손가락/ 흰 콩"도 마찬가지. 물론 시인은 이를 '부등식'으로 암시하지만, 이 '공백'은 '시'와 '필사된 시'의 차이만큼이나 멀다. 열쇠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육중한 철문처럼 그 문장들은 시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완강히 버티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유의할 부분은 「걷는다/ 빛났다」가 전체적으로 세 번째에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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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7-여름호 <시산맥이 찾아가는 시인> 에서

  * 이성미/ 200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칠 일이 지나고 오늘』

  * 박성현/ 2009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