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골목의 발생/ 최지하

검지 정숙자 2017. 5. 18. 11:19

 

 

<제8회 시산맥 작품상 후보> 中

 

 

    골목의 발생

 

     최지하

 

 

  골목의 역사는

  음란한 점집으로 가는 화살표를 따라 순환하는

  낡은 손금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 너를 두고 온 후부터

  우리는 연결되었고

  예의바른 표정으로 너를 안았던 그때부터 단절되었다

 

  수상한 전생을 미래라고 읽은 것 같다

 

  누군가 종교를 묻고

  용서가 필요하다고 일주일의 간격으로 창문을 걸어둔

  그 좁은 길은 행간마다 쓸모없는 명암이 생겨

  몇 개의 발가락이 더 생겨나도 발설되지 않았다

 

  결국 죽음의 내부에서 배경이 될 골똘한 증상들은

 

  통증의 질량만큼 꿰매진 자국을 불행이라 결정할 때까지

  나와 가장 밀접했던 슬픔과 구분할 수 없었다

 

  돋보기 바깥의 세상은 나를 속이기 좋은 곳

  손톱을 자르는 계절에 모음처럼 드물게 아침이 오고

  너는 조금 증폭되어

  조마조마한 나의 낱말들을 메운다

 

  이별이 발생된 세상에서 빠져나가는 골목을

 

  드디어, 가급적 세상과 세상 사이에 붙여 쓰기로 했다

     -전문-

 

 

  추천사유> 한 문장: 누구에게나 기억은 있다. 골목은 각자가 품고 있는 세계일 수도 있고 한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통로일 수도 있다. 의미는 제각각이겠지만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기억은 언제나 애틋하고 아픈 법이다. 최지하 시인은 그런 골목의 기억을 감각적인 언어로 소환시키면서 먼 너에게 손을 내민다. 골목이 세상 전부였던 시절, 그 기억의 역사를 기록하다 보면 때때로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고 힘겹게 세상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고요하게, 때론 소란스럽게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다. (김온리/ 2016년 『문학의식』으로 등단)

 

  추천사유> 한 문장: 어느 늦은 밤, 나는 골목을 걷다가 문득 이 길의 연원이 궁금해졌다.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던 골목길이 어느 때부턴가,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허청대며 걸었다. 깨진 외등은 나의 질문에 눈 감았고, 등 돌린 담벼락은 입을 닫았다.// 고대 인도의 종교인 베다Veda. 물을 가르는 무수한 물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흐르지만, 결국 바다에 이르러 개별성을 버리고 거대한 물 덩어리로 하나가 된다는 범아일여 梵我一如의 사상. 우리의 근원적 질문에, 전체로서의 자연과 부분으로서의 인간이 본질적으로는 하나라는 가르침으로 답한다. (이동우/ 2017년『시산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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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7-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