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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인이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편집, 낭독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7. 5. 11. 21:44

 

 

    <서정주 시인이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편집 & 낭독 : 정숙자>

 

 

   “서정주 시인이 객지에서 시골에 있는 부인에게 보낸 편지”

   - 여성과 서한 (女性과 書翰) 1965년 刊, 박목월 著

 

 

 

  숙이여.

  글월 받아 읽었소.

  고향의 어느 구석진 밭두둑에 피는 조그만 꽃의 기억과도 같이 언제나 서러운 그대의 편지.

  숙이여.

  나는 이 편지를 가지고, 지금 조용한 어느 나무그늘이나 풀밭을 찾아가려 하오.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고쳐 고쳐 읽으려 하오.

  서러운 행복, 숙은 그런 일을 생각해 본 일이 있소.

  십칠일 쯤 래성하겠다고 하였으나, 지금 서울 와서는 절대로 못 쓰오.

  서울이 어디라고! 내가 언제 마음놓고 오라고 하도록까지는 괴로운 대로 쓸쓸한 대로 기다려 주는 것이 나를 위해 주는 일이오.

  괴롬을 참고,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기다려 주는 것이 나를 위해주는 일이오.

  숙! 취직은 아직도 마련이 없소.

  아주 싼 월급자리가 있긴 하지만, 이건 나도 좀 생각해 볼 일이오.

  삼백 원쯤 얻어 먹을라구.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서 있는 노동을 내 힘으로 어떻게 견디어 내려는지 문제니까 하여간 결정되는 대로 그때 또 알리기로 하겠소만.

  사는 것은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 먹고 살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짓을 모두 해야만 된다는 것은 내게 큰 슬픔이오.

  팔월 추석 때쯤 잠깐 집엘 다녀오고도 싶으나 그것도 아마 마음 같지 않을 모양이오.

  서울도 요즘 좀 선선해지긴 하였으나 아직도 더웁소.

  보내준 광포옷은 지금도 잘 입는 중이오.

  이불은 아직 소용없소.

  요하고 홑이불 한 벌을 빌려 어느 친구한테 얻어먹고 있으니까.

  정읍 어머니와도 자주 편지 왕래가 있소.

  얼마 전에 몸이 좀 편찮았더라고.

  그럼 우선 이만 쓰니, 늘 몸 건강에 조심하고 고통이나 비애 따위는 언제나 이겨나갈 일!

 

      팔월 이십팔 일

      소격정에서 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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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편지 -서정주 편-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14) 

    -『문학세계』2008년 3월호 (통권 제164호) 58쪽

 

 

  서정주 시인(1915~2000)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그는 서울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 불교전문학교는 훗날 혜화전문학교가 되었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가 되었다. 일본의 형틀을 메고 살아가던 시대에 서정주는 고향에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장도 얻을 겸 하는 일 없이 서울에 와 고생하고 있었다. 일자리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고 친구의 집을 찾아다니며 고생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 일정한 주소도 없고 그래 편지나 기별들은 이봉구가 살고 있는 집으로 해놓게 되었다.

  하루는 서정주의 처가 남편에게 편지를 했다. 일정한 주소가 없으니 이봉구의 주소로 한 것이다.

  그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 남의 편지를 승낙도 없이 열어보고 글이 하도 사랑스러워 편지는 자기가 간직하고 그 내용만 서정주에게 전했다. 임자가 그 편지를 달라고 해도 이봉구는 주지 않았다.

  그가 아내의 편지를 읽고 답을 썼는데, 그 답이 또한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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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책 59쪽

  “그 편지는 하도 사랑스러워 내가 보관해야겠어. 그 대신 편지의 내용은 그대로 옮겨서 줄 테니 그리 알게.” 하고 그 편지를 그대로 베껴주고 말았다.

  서정주는 아내의 친필 편지는 결국 보지 못한 것이다.

  이봉구는 그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잡기장에다 연필 끝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 쓴 편지, 그러나 남편에게 하는 편지로는 진지하고 사랑과 정이 있는 편지다.

  그야말로 명문 편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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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주 시인의 부인이 객지에 있는 남편에게 보낸 편지”

    - 앞의 책, 같은 쪽

 

 

  오랫동안 소식이 적적하와 아례압

  그곳에 계실 줄 믿습니다.

  이곳의 숙(淑)은 부모님 모시고 무고하옵니다.

  그동안 몸이나 건강하시온지

  숙은 주야 그게 걱정이오며

  멀리 비나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비가 아니 와

  모들도 못 심고, 흉년 들까봐 먹을 것 걱정들이나 하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들의 생활인가 봅니다.

  정주 씨.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옵는지

  시골의 달밤이라 어찌 이렇게도 맑고 맑은 달인지 깨끗한 저 달을 바라보니 저의 마음도 저 달과 같이 지고 싶습니다.

  저 달이 내 앞에 오면 숙도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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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이 자료에 맨 먼저 수록한 미당의 편지는 제가 스무 살 때(1972년), 친가(親家)의 선반에 꽂혀있던『여성과 서한(女性과 書翰)』을 읽다가 매혹되어 베껴두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 노트입니다    그로부터 16년 후(1988년 12월호), 저는 기적과도 같이 미당 선생님 추천으로『문학정신』에 등단하게 되었지요. 그로부터 다시 20년 후, 앞서 말씀드린『문학세계』2008년 3월호(61쪽)에서 제 노트에 써놓은 것과 똑같은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감동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들을 어린 시절에 했던 것처럼 또 베껴서 어린 시절의 그 노트에 끼워두었습니다.    이렇게요!    그리하여 오늘 이렇게 한 통의 편지에 얽힌 45년의 궤적을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기록이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제가 36세에 등단했는데 이 편지를 처음 베낀 날로부터 36년 만에『문학세계』에서 재회했다는 것도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천지간에는 우리의 감각이나 지혜가 가닿을 수 없는 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미당 선생님께는 보여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노트. 그리고 먼 강을 건너온 오늘. 선생님 내외분께서 가꾸고 거니시던 이 뜰에서 여러분께 공개하게 되어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실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생전에 입은 은혜 갚을 길 없사오며, 세세생생 극락왕생 빌고 또 간절히 축원하나이다.’ // 2017.4.3-13:23. 정숙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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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회 미네르바문학회 시낭송회 팸플릿 <2017 새봄, 시인을 만나다> 에서   * 2017.4.29. (토). 오전 11시, 미당 서정주의 집

  * 후원: 계간 미네르바, 시예술아카데미,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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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17-여름(66)호 <현장 스케치/ 권이화(편집위원) 글>과 함께 전문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