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흔든 패션리더들 · · · 1회>
파리 패션의 창시자,
루이 14세
박신미 / 국립안동대 부교수
프랑스 파리를 스타일의 천국으로 만든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단연 루이 14세이다. 16세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패션 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스타일은 이탈리아에서부터'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당시 유럽 트렌드의 중심에는 로마와 베네치아가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예술의 트렌드를 주도한 로마. 그리고 유리공예와 레이스 산업을 필두로 동방의 문물을 수용해 융합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준 베네치아는 유럽 트렌드의 산실이었다. 하지만 태양왕 루이 14세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5살이 되기도 전 국왕에 즉위한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상 최장기인 72년을 집권한 절대군주였다. 어린 루이는 즉위 후 20여 년 동안 이탈리아 추기경 쥘 마자랑에게 실권을 넘겨주었으나 1661년 그가 사망하자 자신이 꿈꾸어온 개혁 정책에 박차를 가한다. '국왕의 지위는 신이 내린 것'이라고 믿었던 루이는 자신의 제국이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단신에 외모콤플렉스가 있던 태양왕은 스스로를 범접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무기가 바로 '패션'이었다. 어린 아이의 주먹보다 큰 루비, 금사로 짜인 직물에 1,500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채워진 평상복 재킷, 그리고 보석으로 굽을 만든 하이힐까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그의 스타일은 절대군주의 위용을 뽐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루이의 바람대로 누구도 감히 왕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명석한 루이 14세는 패션을 정치에 이용했고, 프랑스를 스타일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 황금벽지로 장식된 베르사유의 방들은 은으로 만들어진 가구로 채워졌고 모든 방에는 어김없이 화려한 크리스털 상들리에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들 중 단연 돋보이는 공간은 베네치아 유리 장인을 납치해와 만든 '거울의 방'이었다.
겨울의 방은 루이 14세에게 화려한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왕은 거울의 방에서 무도회를 열며 파티를 정치에 활용하였다. 매일 밤 열리는 크고 작은 파티에는 왕에게 아첨하기 위해 귀족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왕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으로 절대군주의 위용에 경의를 표하였다. 파티가 열리면 열릴수록 귀족들의 재정은 고갈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력을 잃은 귀족들은 왕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었다.
태양왕은 자신의 스타일이 프랑스를 넘어 유럽을 지배하기를 원했고, 그의 소망대로 루이의 스타일에 매료된 유럽인들은 파리의 스타일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파티가 끝나면 왕의 스타일은 도자기 인형으로 만들어져 판도라 상자에 담겨졌고, 이는 즉시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배달되었다. 이를 간파한 루이는 곧 '쇼핑의 천국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밤에도 잠들지 않는 파리의 거리로 쇼핑하러 오세요"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루이의 참모인 콜베르는 파리의 상점들에 횃불을 밝히며 밤늦게까지 주변국들의 패셔니스타들을 맞이했다. 상점 주인들은 진열장에 이전 무도회에서 태양왕과 왕가의 여인들이 착용한 의상과 신발들을 도자기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이는 곧 상품이 되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루이의 패션 홀릭은 패션시스템 발전에도 일조했다. 당시 귀족들은 집안 소속의 재단사에게 옷을 제작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비전문적인 시스템으로는 베르사유의 트렌드를 쫓아가기에 한계가 있었고, 1715년 7월 베라공작 부인을 주축으로 한 트렌드 모임은 계절의 개념이 포함된 스타일 컬렉션을 개최하였다. 일명 공주님들이 제안하는 베르사유 스타일… 트렌드가 반영된 패션 스타일이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의상은 1년에 2번의 시즌을 중심으로 발표되었고, 이로써 트렌드에 따라 움직이는 '패션'(La Mode)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
멋쟁이들의 필수품으로 여겨진 3단 우산,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품위를 지키며 커피를 마시는 '살롱 드 카페' 문화,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닌 보는 예술로서의 음식을 지향하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까지…. 하이힐을 신고 자신의 각선미를 뽐내기 좋아했던 루이 14세의 광기어린 패션 집착증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 멋진 문화들과 만날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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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에세이』/ 2017-5월호 <세기를 흔든 패션리더들 · · ·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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