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누리는 자유는
행복이 아니다
김홍신 소설가
숨만 쉬어도 나이 먹는 걸 느끼는 나이가 되면 세상만사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인생을 직선으로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인생은 곡선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도 나이 먹은 덕임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했기에 산을 보면 마냥 좋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산은 이렇다 저렇다 반응이 없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반응하지 않으면 섭섭하기 그지없다. 하긴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면 꽃이 행복한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면서 사람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면 그만큼 그 대상으로부터 대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홍매화를 선물로 받았다. 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라는 말에 마음이 시렸다. 분재를 길러본 경험으로 미루어 뿌리를 바짝 잘라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화분 속의 흙도 옥토가 아니라 영양분이 거의 없는 마사토 같은 것으로 채웠을 게 분명하지 싶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며 꽃을 피운 탓에 꽃이 질 때도 삼사 일만에 우수수 떨어졌다. 다른 꽃 같으면 오래도록 꽃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홍매화 분재는 빨리 꽃이 지기를 바랐다. 뿌리가 잘 자라지 못하게 만든 철사와 비닐 그물망을 제거하고 큰 화분에 분재를 옮겨 양분 많은 흙을 넣고 홍매화에게 자유를 안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옮겨 심었는데도 홍매화는 몸살을 앓지 않고 싱싱했다. 열흘에 한 번씩 물도 줄만큼 되었지만 홍매화를 볼 때마다 어서 햇살 좋은 봄날이 오기를 고대하곤 했다. 봄이 오면 햇빛 잘 드는 마당에 질 좋은 거름을 섞어 구덩이를 파고 홍매화가 제멋대로 뿌리를 뻗고 가지를 벌리며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행복한 사람은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식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양내기 위해 가지마다 철사로 조이고 잔뿌리를 쳐내어 잘 자라나지 못하게 만든 홍매화 분재가 만약 말을 할 줄 안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보나마나 풀어달라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고달파도 좋으니 내 멋대로 살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 연구팀이 15살 된 침팬지에게 4년간 140여 개 단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4년 뒤에 침팬지의 첫마디는 "나를 놓아줘(Let me out)"였다고 한다. 놓아달라는 것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절규였을 것이다. 천적이 많고 먹이 구하기 어렵고 병들어도 치료해줄 곳이 없더라도 자연계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소망일 것이다.
봄볕이 따스해지자마자 나는 홍매화를 햇볕 잘 드는 마당에 옮겨 심었다. 모양이 비뚤어져도 좋고 꽃이 많이 피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걸 보는 게 좋을 뿐이다. 30년 넘게 마당 있는 집에서 살면서 때마다 농약을 칠까 생각해 보았지만 애써 참은 덕에 우리 집 마당에는 꽃을 뜯어먹는 벌레부터 취나물 대궁까지 먹어치우는 녀석이며 회양목 갉아먹는 녀석까지 벌레천국이 되었다. 하긴 그 바람에 마당에는 벌써 나비와 벌이 날아들고 참새와 까치의 놀이터가 되고 개미소굴이 되었으며 거미줄이 바람그네를 타곤 한다. 지렁이가 밀어올린 작은 흙돌기를 볼 때마다 서울에서도 시골살이를 즐긴다는 생각을 한다.
홍매화를 마당에 심고 손을 씻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홍매화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안달을 하면서 어째서 나 자신은 자유롭지 못하고 세상사에 끌려 다니고 있는가. 세상사가 나를 묶은 적도 없고 내친 적도 없다. 내가 나를 묶어 끌고 다녔음에도 세상 탓을 했다. 홍매화에게는 자유를 안겨주려고 하면서 나는 왜 자유로운 자가 되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니 바로 내가 '생각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유인이 되고 싶은 갈증 때문에 홍매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당에 봄꽃들이 화들짝 피어나는데 내 마음의 꽃은 피어나지 않은 것은 홍매화에게는 자유를 주려고 하면서 가족이나 인연 맺은 사람들의 자유에 대해서는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아니, 자유를 상실한 뭇 사람들을 거들어 주지 못했을망정 기도라도 간절하게 해주었는지 생각해보았다.
혼자 누리는 자유는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걸 더 늦지 않게 깨닫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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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에세이』/ 2017-5월호 <김홍신의 '살다 보면' · · · 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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