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직도, 때때로 그리고 자주/ 김택희

검지 정숙자 2017. 4. 28. 23:33

 

 

    아직도, 때때로 그리고 자주

 

     김택희

 

 

  원시림을 걷고 있어요

  백악기를 건너온 메타세쿼이아나무숲 지나

  물푸레나무 사이로 바람이 길을 트네요

  나무 냄새 찰박해요

  지금도 생각하죠

  눈 안에 갇혀 있는 말

  아무리 더듬어도 눈동자 끝에서만 가물거릴 뿐

  터지지 않던 기억

  당신은 없나요

  새소리처럼 생생한데 그릴 수 없어요

  좁은 계곡에 불시착한 헬리콥터의 잔해 같은

  부러진 기억 꿰맞추다가

  바람의 메시지 들어요

  큰 나무에서 내미는 작은 움의 더듬거리는 손짓

  땅속으로 뻗은 뿌리의 발짓과

  먹이 나르는 어미 새의 날갯짓

 

  우듬지에 새부리 같은 촉 몇 개

  바람의 눈썹 건드리고 있어요

  오늘 밤엔 갇힌 말들 터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문-

 

 

   해설> 한 문장: 위의 시는 "아직도, 때때로 그리고 자주" 원시의 냄새와 소리, 바람의 길과 메시지, 그리고 화자 내면의 원형질 속에 내재해 있는 "말"을 듣고, 원시의 기억을 환기하고 있음을 노래한 시이다. 지금 여기 현대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 원시의 것들과 만날 수 있음을 노래한다. 메타세쿼이아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공룡시대 때부터 살았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원시의 나무인 셈이다. 원시의 냄새와 소리.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살았던 인류의 언어를 기억하는 나무이다. 이 시에서의 '당신'은 특정한 사람이기보다는 화자 자신이나 모든 사람을 의미할 수 있다. "아무리 더듬어도 눈동자 끝에서만 가물거릴 뿐/ 터지지 않던 기억/ 당신은 없나요"에서의 "당신"은 또 다른 자아인 원시의 자아일 수도 있다. 자연 속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던 자아. 그 자아의 말, "우듬지에 새부리 같은 촉 몇 개/ 바람의 눈썹 건드리고 있어요/ 오늘 밤엔 갇힌 말들 터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에서의 '오늘 밤엔 갇힌 말들'을 김택희 시인은, 그 언어들을 찾아 시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원시의 말이며 원초적인 언어가 된다. 시인들이 늘 몽상하는 그 언어일 수 있다. (유한근/ 문학평론가, 전 SCAU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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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바람의 눈썹』에서/ 2017. 4. 28. <(주)문학수첩> 펴냄

   * 김택희(本名 金英姬)/ 충남 서산 출생, 2009년 『유심』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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