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옹립擁立
김신영
오래되었어, 바위틈에 세 들어 사는
내 활자들이 이 거리를 쓸면서 비척거린 지는,
붉은 미진微塵이 수목과 큰 강을 지나
길에서 길을 만나 깔깔거렸지
바위산에서는 내 정보가 네게로 넘어가는 소리
화면에 담겨 아우성치느라 그 끝이 환하다
소리에 네가 담겨 오고 내가 담겨 가고
미세한 소리 하늘을 넘어 걷잡을 수 없어
대머리 독수리는 폭풍을 쏘아 우주까지 제압하였다
하여, 소리 내지 마라, 누군가 너를 낱낱이 읽으리
움직이지 마라, 너의 울음 구곡간장 곡곡에 들리리
가지 마라, 준비하지 않았다면 실망뿐이리
잘생긴 얼굴 왕느릅나무가 황제로 옹립되어
파리들 둥글게 모여 열렬하게 박수치는 소리가 울린다
고사목 군락에서 그가 가지를 흔들며
헛기침하는 소리 계곡에 가득히 울린다
아니다, 진물 흘리는 상처, 진초록물이 드는 소리
수백 마리 응애가 이파리에 붙어 응애응애 진을 빠는 소리
불붙는 불개미 수천 마리 젖은 잎으로 둥지 짓는 소리
염소 똥을 굴려 만든 집, 나뭇잎을 돌돌 말아 지은 집도 없이
평생 홈리스로 유령이 되어 우주를 떠다니는 우리 발소리
풀여치가 뒷다리를 떠는 소리, 고사리가 새벽에 기지개 켜는 소리
버섯이 먹물을 지고 가는 소리, 집유령거미가 그물망 치는 소리
바위틈 이끼가 한철 물 마시는 소리
그, 틈, 에, 나의 황제가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위의 시 「소리의 옹립」에서 고안해 낸 "활자"들은 너덜지대 "바위틈에 세들어" 산다. 그 활자들이 작디작은 먼지가 되어 산천초목을 떠돌며 "깔깔" 소리 내어 웃는다. 활자엔 각종 "정보"가 담겨 생각이 춤을 추고 "내 정보"와 네 정보가 섞여 불안한 화음을 이뤄낸다. 어느새 미묘한 합창이 시작되고, 내 소리와 네 소리를 도통 구분할 수가 없어 세계와 "우주"도 시나브로 카오스 상태다. 당신과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각종 활자와 소리가 미친 듯 굽이굽이 흩날린다. 어디든 찾아가서 듣게 되는 소리의 만찬! 겸허한 자세로 소리를 낮추고, 한 맺힌 마음속을 감추려면 "소리 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병든 고목들이 즐비한 곳에도 "진초록 물이" 든다. 때론 죽은 나무도 생태계에 활력소가 되어, 숱한 곤충을 먹여 살리고 희생의 진가를 발휘한다. 연이어 생명체의 부활 및 재생의 원동력이 된다. 그들 "고사목"이 온갖 만물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 그리고 집 없는 유랑자의 "발소리"에 맞춰 극한 리듬을 탄다. (김선주/ 문학평론가, 건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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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차 기획시집 공모 당선 시집『맨발의 99만보』에서/ 2017. 4. 15. <시산맥사> 펴냄
* 김신영/ 충북 충주 출생,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외, 평론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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