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井 3
유형진
어떤 문들은 안에서 잠겨 있어요
안에서 열고 나오지 않으면
바깥에선 열 수 없습니다
등 뒤로 점점 커지는 열기구
한쪽 귀에서는 푹푹 눈 내리는 소리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벌새가 날개 펄럭이는 소리
누군가 고막을 찌릅니다 톡톡톡,
다리미,
스테이플러,
조각쉐이크,
트레비 분수,
표범의 눈물 자국,
코스모스의 벨벳 같은 꽃잎과,
무희들의 저 디저트 같은 꽃술,
그리고 여덟 개의 초가 달린 난청의 밤
문을 열면 우리는
와하하하하 웃거나 웁니다
문은 길과 숲과 같습니다
어쩌면 저 지글거리는 태양하고도 같습니다
얼음 같은 달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고문실이 아니라면 모든
문은
안에서 잠기지
바깥에서 잠기는 문은 결코 없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우리는 모두, 시는 항시, 모국어라는 '고문실'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안에서 잠겨 있"는 "어떤 문"을 열어야 한다는 필연성이 시의 존재 이유 중에서 우리가 꼽아볼 하나는 아닐까? "다리미" "스테이플러" "조각케이크" "트레비 분수" "표범의 눈물자국" " 코스모스 벨벳 같은 꽃잎" "무희들의 저 디저트 같은 꽃술" 같은 표현을 매일 접하고 살지만, 이들이 하나로 어울려 뿜어내는 미지의 소리와 다채로운 무늬를 듣지도 보지도 못해 우리 모두 "난청"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외국어가 더러 섞여 있다 해도, 사소하고 일상적이라고 해도, 이 말들의 현실의 언어, 현실이 매일 토해내는 언어, 내가 무언가를 보고 타자의 말을 듣고 살아가는 공간을 떠다니는 아름다운 말들이다. 이 말들을 어색하다며, 이해하기 어렵다며, 겉멋이 들었거나 유치하다며, 알게 모르게 모국어 보호의 무의식적 강박에 사로잡혀 삶에서 솎아내거나 추방해야 한다는 편견에 우리 모두 갇혀 있다는 것은 아닐까? 유형진은 이렇게 걸어 잠근 통념의 빗장을 풀어헤치고 말의 내부로 들어가야, 기쁨과 슬픔이 살아 숨 쉬는 세계, 그렇게 리얼리티의(인) 세계, 현실 속의 현실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이 문은(시의) "길"이자 (시의) 삶이기도 한 "숲"이며, 열어야만 비로소 "지글거리는 태양"과도 같은 열정과 "얼음 같은 달"과도 같은 냉정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마음속에서 우리가 걸어 잠근 통념이다. 마지막 언어 통념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시의 조건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여기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말들의 추방이야말로 "고문실"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모종의 행위와 닮은꼴이지 않던가. 시가 세상의 모든 "꼰대짓"을 거부하는 참신한 시도라면, 시는 시의 엄숙함이나 시의 권위에더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조재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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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에서/ 2015. 7. 24. <중앙북스(주)> 펴냄
* 유형진/ 1974년 서울 출생,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피터래빗 저격사건』『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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