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두루마기 편지/ 김영탁

검지 정숙자 2017. 5. 1. 02:50

 

 

    두루마기 편지

 

    김영탁

 

 

  고향에 혼자 사는 어머니 두루마기 사준다고 한다

  명절 때나 고향에 갈 때마다

  근 3년 동안이나 그렇게 얘기했다

  필요 없습니다

  요즘 누가 두루마기 입나요

  어머니는 인근 안동에 한복 잘하는 집 있다고

  직접 맞춰 주려고 한다

  입을 일도 없는데 정말 필요 없습니다

  요즘 누가 두루마기 입나요

 

  어느 날 아침 9시,

  어머니한테 농협이라며 전화가 왔다

  농협 직원 바꾸어 줄게 통장번호 부르라고 한다

  아예 직접 맞춰 입어라, 하며

  백오십만 원을 부쳤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

  왜 그리 부쳐 주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새장가갈 일도 아닌데

  아니, 내가 두루마기 입을 일이나 있나요

  아무튼 돈 부치니 꼭 한복 한 벌 하고 두루마기 해 입어라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울서 발가벗고 다닌다고

  벗은 채 막춤이나 추고 다닌다고

  이제 어른 되라고 점잖은 어른 되라고

  그게 안쓰러워 두루마기 맞춰 주려고 그러셨는지

 

  붉은 단풍은 쉬이 지지 않고

  가을 하늘에 한 땀, 한 땀 수놓을 때

  고향에 혼자 사는 어머니한테 두루마리 편지가 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요즘 누가 편지 쓴다고

  긴긴 두루마리 편지,

  끝없는 편지

     -전문-

 

 

  해설> 한 문장: 근 3년 동안 두루마기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두루마기 사랑은 계속된다. 어머니는 "아예 직접 맞춰 입어라, 하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인 '백오십만 원'을 '내' 통장으로 부치신 것이다. '나'의 입장은 "아니, 내가 두루마기 입을 일이나 있나요"라는 입말에 담겨있다. 어머니는 왜 불필요한 한복과 두루마기를 해 입으라는 것일까? 3연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고향' 떠나 '서울' 가서 "발가벗고 다닌다고/ 벗은 채 막춤이나 추고 다닌다고"  "이제 어른 되라고 점잖은 어른 되라고/ 그게 안쓰러워" 그러셨을 것으로 짐작해보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기고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자식 또한 여전히 '어른'이 아닌 '아이'인가 보다. 두루마기는 어머니의 사랑을 아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걱정이나 염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두루마리 편지'이다. '나'에게로 가로로 길게 이어 돌돌 둥글게 만 종이인 두루마리에 쓴 어머니의 편지가 어색하다. "요즘 누가 편지 쓴다고"라는 '나'의 구어는 이를 입증하는 말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 어머니의 "긴긴 두루마리 편지,/ 끝없는 편지"는 특이하다.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긴긴' 두루마리 편지, '끝없는' 편지는 그녀의 곡진한 사랑을 의미한다. 조금 더 어렵고 불편할 수 있지만, 어머니는 쉽고 편리한 방법이 아닌 정성을 담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 '나'는 "요즘 누가~"의 어법으로 어머니의 '두루마기'와 '두루마리 편지'가 시대착오적임을 지적하였으나, 이는 '나'의 본심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두루마리 편지'가 아니라 '두루마기 편지'이다. '두루마기 편지'는 오식誤植이 아니다. 여기에는 '두루마기'와 '두루마리 편지'라는 어머니의 사랑의 매개를 동시에 포옹하려는 김영탁의 따스한 진실이 담겨있다. (권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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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냉장고 여자』에서/ 2017. 3. 31. <도서출판 황금알> 펴냄

  * 김영탁/ 1959년 경북 예천 출생, 1998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새소리에 몸이 절로 먼 산 보고 인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