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김명희(수필)
울릉도 태하재 올라가는 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너도밤나무 숲이 있다. 이 너도밤나무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백 그루의 밤나무를 심지 않으면 큰 재앙을 내린다고 경고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밤나무 백 그루를 심고 정성껏 가꾸었다. 얼마 지나서 산신령이 밤나무를 확인하러 나타났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 보아도 밤나무 한 그루가 모자라는 아흔아홉 그루였다. 산신령은 자신을 속였다며 노발대발 화를 내었다.
"저희들은 분명히 백 그루를 심었습니다. 한 번만 더 세어 보시지요."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청에 다시 나무를 세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흔일곱, 아흔여덟, 아흔아홉……."
그때였다. 옆에 서 있던 나무가 느닷없이,
"나도 밤나무입니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산신령이 살펴보았더니 정말 잎사귀도 밤나무와 비슷하고 밤을 닮은 열매도 달고 있었다. 그제야 산신령은 100그루의 밤나무를 확인하고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밤나무는 아니지만 마을을 살린 공을 인정하고, "그래, 너도 밤나무 해라." 하고, 그 나무를 밤나무 대열에 끼워 주고 잘 가꿔 주었다.
너도밤나무는 오직 울릉도 성인봉의 높은 곳에서만 자란다. 잎도 밤나무보다 약간 작고 더 통통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비슷하게 생겼고, 조그만 세모꼴의 도토리를 달고 있으니 밤나무와 먼 친척뻘로 쳐주어도 무방하다 하겠다.
너도밤나무 말고 나도밤나무도 있다. 명품을 흉내낸 유사품들이 판을 치는 것처럼 나무 중에서는 명품에 속하는 밤나무 이름을 흉내낸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가 있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도밤나무에도 너도밤나무 못지않은 공로가 있다. 율곡 선생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한 도사가 그의 관상을 보고는 커서 훌륭한 인재가 될 텐데 범에게 물려갈 팔자라는 말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밤나무 천 그루를 심으면 호재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에 부지런히 밤나무를 심었다. 드디어 호랑이가 찾아와서 밤나무를 세어보기 시작했다.
"한 그루, 두 그루… 9998, 9999."
세어 나가는데 한 그루가 비었다. 그때, "나도 밤나무!" 하고, 나무 하나가 소리를 질렀고, 천 그루를 확인한 호랑이는 그대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 나무 역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너도밤나무처럼 밤나무의 가족이 되어 나도밤나무가 되었다.
하지만 나도밤나무는 밤나무하고는 전혀 다르게 콩알만한 새빨간 열매가 줄줄이 달린다. 그래도 잎은 밤나무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니 그냥 봐주기로 하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리. '너 다르다 나 다르다' 다투는 것보다 한결 좋다. '너도'는 인정이요, 함께이다. '나도'는 공감이요, 동참이다. 상대방의 좋은 점은 인정하고 힘든 일에는 나도 함께하는 너도나도밤나무가 되어야 한다.
요즘에는 '함께'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자'들이 아무에게나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정치인들은 '너도' 인정 못하고 '나도' 공감할 수 없어 그저 싸워대기 바쁘다. 잘난 놈은 나만이어야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너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아주 오래 전 사극드라마에서 나온,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 얼마나 가슴 따뜻한 공감인가.
"그래, 너도 이리 오너라. 함께하자. 나도 같이 가련다."
이 얼마나 살 만한 세상일까.
누가 나를 위로할 때/ 나도 너도 나무가 되거나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이다./ 한 이름을 나누어서 서로가 될 수 있다./ 숲은 서로 기울여 마주하고/ 같은 겨울과 오솔길을 둔다
-봉윤숙, 「너도밤나무」중에서
봉윤숙의 시처럼 너도 나무가 되고 나도 꽃이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알밤이 알차게 익어가는 명품 밤나무 숲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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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文學』 2017-4월호 <수필> 에서
* 김명희/ 2003년『책과인생』으로 등단, 조경희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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