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에세이의 탄생/ 황인숙

검지 정숙자 2017. 4. 28. 00:41

 

 

   <월간에세이> 30주년 창간 축시

 

 

    에세이의 탄생

 

    황인숙 시인 

 

 

  당신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건

 

  갈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멀리 있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거미줄 위에도 앉고

 

  아람브라 궁전도 거닐 수 있습니다

 

  당신 앞에 컴퓨터나

 

  공책이 있기에요

 

  때로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지그시

 

  당신의 삶을 볼 것입니다

 

  당신이 컴퓨터나

 

  공책 앞에 앉았기에요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어떤 동물, 어떤 식물,

 

  바다, 바위, 조약돌, 모래알,

 

  천공, 구름, 노을, 바람……

 

  당신은 그들을, 혹은 그 속에서

 

  살기를 시도하고

 

  그러면서 새로 삶을 발견할 것입니다

 

  뛰어드세요!

 

  자꾸 멈칫대면

 

  점점 더 무서워집니다

 

  누가 뭐라겠습니까

 

  당신의 에세이

 

  마음 가는대로

 

  시작되는 곳에서 시작하고

 

  그치고 싶은 데서 그쳐도 그만입니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당신은 처음에 머리를 궁굴리고

 

  다음에 글을 궁굴릴 것입니다

 

  조마조마하면서

 

  얼마나 즐거운 시간입니까

 

  한 편 에세이를 쓴 뒤

 

  당신은 번지점프라도 해낸 양 의기양양

 

  한층 강하고 너그럽고, 아름답게 빛나고

 

  세계는 넓어지기도

 

  깊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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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에세이』/ 2017-5월호(통권 361호) '창간 30주년' 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