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판과 친구들
- 에피소드 1 : <허니밀크랜드>의 이상한 삼겹살 파티
유형진
강이 있고 산이 있고 양파가 있습니다.
<초록코털괴물>은 강물 속에 <옷걸이요정>은 산그늘에
<풍선머리조종사>는 양파 껍질 사이에 있습니다.
세 친구가 도착한 <허니밀크랜드>에서 삼겹살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여기선 숯 대신 먹구름을 연료로 사용합니다.
먹구름 연료는 연기도 안 나고 덴마크산 껍질 삼겹살을 아주 노릇노릇 잘 구워줍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어려운 축산 농가를 생각하면 한돈을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만,
여긴 지구본에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잊은 분이라고 여기고 다 이해합니다. 저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까다로운 시인이 아니거든요.
어쨌거나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마음이 가뭄 콩밭 같은 분들은 이런 이야기에 빠져들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초록코털괴물>이 평소답지 않게 고기를 먹네요. 그것도 아주 많이 먹습니다.
어찌 된 걸까요?
<초록코털괴물>의 이름 때문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만 그는 사실 채식주의자입니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하게 되는 어떤 계기가 있다고 합니다.
<초록코털괴물>과의 첫 번째 인터뷰에서 그의 채식에 관한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놀라운 이야기는
너무 길어 나중에 지면이 있을 때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어쨌든 오늘 <초록코털괴물>은 좀 슬퍼 보입니다.
<옷걸이요정>이 살 수 있는 행복이 얼마 없어 보이네요.
<옷걸이요정>은 평소 상추와 깻잎만 먹던 <초록코털괴물>이 고기를 다 먹어버려서
쌈장에 마늘만 찍어 먹고 있습니다.
오늘치 행복을 사기 힘들 것 같아 초조해하면서 말입니다.
양파 껍질 사이에 누워 있던 <풍선머리조종사>도 나와서 파티를 즐겨보려 합니다. 그런데,
<풍선머리조종사>는 가뜩이나 싫어하는 <초록코털괴물>이 고기를 마구 먹고 있으니 비호감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그래서 애꿎은 먹구름 연료를 뻥뻥 걷어찹니다.
양파 냄새 펄펄 풍기는 <풍선머리조종사>가 먹구름을 걷어찰 때마다
번쩍하고 번개가 일어납니다.
곧 천둥도 따라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채식주의자 <초록코털괴물>은 자꾸 고기만 먹고,
<옷걸이요정>은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살 수 없어 불안하고,
<풍선머리조종사>는 자꾸만 구름을 괴롭히고.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허니밀크랜드>의 이상한 삼겹살 파티 때문에
올여름,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것입니다.
-전문,『우유는 기쁨 기쁨은 조각보』(중앙북스, 2015)
▶ 앨리스가 본 이종(異種) 현실의 세계(발췌) : 김윤정
유형진의 시가 쓰여지는 지대는 위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없는 세계'이다. '허니밀크랜드'라는 동화책 속에나 나옴직한 그 세계는 현실 세계 틈새에 자리잡고 있는 환상의 시공에 해당한다. '허니밀크랜드'가 나타내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각이야말로 현실성으로부터 저 멀리 도망쳐버린 것임을 암시한다. '초록코털괴물'이라든가 '옷걸이요정', '풍선머리조종사' 등의 등장인물들 또한 이 시의 지대가 동화임을 표나게 말하고 있다.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는 '숯 대신 먹구름을 연료로 사용하'듯 의도적으로라도 현실을 비껴나 있는 허상의 공간인 것이다. 화자의 말대로 그곳은 '지구본에 없는 나라'이다./ 현실은 여기에서 공상 만큼의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이 세계에서 현실을 염려하는 이는 오히려 낯선 외계인처럼 취급당한다. 요컨대 이곳은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서 환상에 의해 환상을 위해 존재한다. 재미있는 것은 위 시가 환상이란 현실과 아주 다른 차원의 완전한 세계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환상은 현실에 종속된다거나 현실의 부차적인 세계가 아니라 엄연히 현실과 다르게 있는 현실 이외의 세계라는 것이다. 상황이 그러할진대 여기에서 흔히 현실을 이끌어가는 논리나 법칙, 언어와 질서 등은 아무런 역할도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더욱이 현실을 지탱하는 '짐을 진 자'들은 이곳의 시민이 되기 힘들다고 시인은 말한다. '마음이 가뭄 콩밭 같은 분'으로 지칭되듯 그들은 스트레스의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않은자들로, 작고 가벼운 몸만을 허용하는 환상의 구멍을 이들은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앨리스가 몸을 작게 했을 때라야 가까스로 이상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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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실』 2017-봄호 <집중조명/ 시인론>에서
* 유형진/ 1974년 서울 출생, 2001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피터레빗 저격사건』『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 김윤정/ 문학평론가, 2007년 『시현실』로 등단, 저서『한국 현대시와 구원의 담론』『문학비평과 시대정신』『불확정성의 시학』등, 현 강릉원주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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