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찬_카오스모스, 제유법과 콜라주의 교향악(발췌)/ 8초 간 겨울 : 이근화

검지 정숙자 2017. 4. 26. 21:35

 

 

    8초 간 겨울

 

    이근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밤중 의문의 소리에 대한 낭만적인 대답은

  눈에 덮이지만

  반쯤 가려진 세계는 위협적이다

 

  유령이 발을 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보도 위의 미끄러짐에 대한 그럴싸한 대답은

  부러진 왼쪽 팔에 가닿았지만

  나는 어디에나 갈 수가 있다

 

  갑작스러운 부음에 모인 사람들

  지난밤의 피로를 떨치지 못한 채

  흰쌀밥을 조금씩 떠먹는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자꾸 밥이 들러붙었다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영하의 날씨를 실감나게 한다

  안팎이 매우 달라 부옇게 흐려지는 눈동자들

  그래야 한다면 그럴 것이다

 

  찻잎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부르튼 입술과 무거운 어깨는 나의 것이나

  겨울은 알 수 없는 속도로 네게 가서 멈추었다

  한밤중 떨어진 액자 속에서 추억이 조각나고 있었다

    -전문,『서정시학』2017, 봄호-

 

   ▶ 카오스모스, 제유법과 콜라주의 교향악: 이근화의 시(발췌) _ 이찬 

  이근화 시의 고유한 특장으로 지금까지 거론해 온 상호 이질적인 시간과 장면들의 맞섬과 뒤얽힘은 최근 발표된 「8초 간 겨울」같은 시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고 하겠다. 이렇듯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장면들이 이근화의 시편들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행과 행 사이 또는 연과 연 사이에서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전면적인 비약에서 온다. 달리 말해, 이미지들의 마디마디를 갑자기 전환시켜 이들의 짜임 관계를 상호 이질적인 것으로 비산시키려는 시인의 정교한 축조술과 방법론적 지성에서 비롯한다. 이는 지난 네 권의 시집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것이긴 하지만, 「8초 간 겨울」이란 최근의 작품에서도 또렷한 형세로 각인되어 있다./ 다시 작품의 세부로 되돌아가 보자. "8초 간 겨울"이라는 표제어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라. 그것은 "겨울"이란 계절, 그 통상적인 시간의 체적을 통해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8초 간"이라는 수식어를 앞머리에 내세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인지하는 시공간의 감각들은 이상야릇한 방식으로 일그러져, 매우 낯설고 어리둥절한 것들로 뒤바뀐다. 또한 지상의 현실에서 두둥실 떠올라 마치 무중력의 지대를 부유하는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저 "8초 간"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의 마디로 인해 "겨울"이란 계절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이 그 내부로 휘감겨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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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2017-봄호 <criticism> 에서

   * 이찬/ 2007년 《서울신문》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 『헤르메스의 문장들』『현대문학의 지도와 성좌들』『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김달진문학상 · 젊은비평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