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30초/ 오늘

검지 정숙자 2017. 4. 21. 10:30

 

 

    30초

 

    오늘

 

 

  빈 테이블이 없는

  나는 다음을 약속한다 평범한

  이별이다 무의식적인

  약속, 다음

 

  의자는 문득 생기고 주문한 샹들리에는 오지 않는다 형

광등이 깜빡이며 긴 시간을 자투리로 만든다 당신과의 다음

이 미뤄지는 이유다 수화기를 들지 않는 것은 간절하게 원

하는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한 우리

의 다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크리스털 잔을 준비하고 새빨간

스웨터를 입었지만 여전히 테이블은 비어 있다 향기로운 저

녁을 줄 수 없는 나는 당신에게 가지 못한다

 

  나의 테이블 위에 당신이 눕는다

  뺨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당신의 심장을 만져본다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돌아섰던 수많은 발자국이 한꺼번

에 쏟아진다 테이블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당신뿐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심장이 멎어도 30초간 청각은 살아 있다

는데 나를 사랑하는 당신은 30초 안에 이별하지 못하고 여

전히, 다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시인은 '당신'과 약속하고, 다음을 약속하고, 이어 재촉을 멈춘다. 어쩌면 그 '30초'는 약속을 하고 이별을 하고 또 무의식적으로 약속을 또 하고 마침내 당신과의 다음이 미루어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시인 스스로도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한 우리의 다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처럼 당신에게 가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당신의 심장"을 만져보면서 "수많은 발자국"을 통해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당신뿐이었다는 걸" 알아간다. 심장이 멎어도 30초간 청각은 살아 있듯이, "나를 사랑하는 당신"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충분하게 완벽한 이별을 하지 못하고 다음을 재촉하지 않는 상태로 남는다. 그처럼 시인은 기나긴 기다림을 택하면서 자신의 상상적 존재론을 만들어간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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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나비야, 나야』에서/ 2017.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오늘/ 2006년『서시』로 등단,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시계제작소>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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