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를 사랑한 소녀는
김도연
꽃이 흔들리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작문시간에 선생님은 삼십 년 후의 자기 모습을 그려보라
하셨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릴린 먼로도 나이팅게일도 무용가
도 아닌 현모양처라고 썼다 단발머리 친구들과 선생님은 나의 생뚱맞은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진실로 나는, 한 남자의 좋은 아내
가 되고 싶었다
어둠이 쇠잔한 길목에서 아침을 기다리듯
나는 진실로 소망했지만
언제나 발칙한 몽상뿐
모든 것은 아차, 하는 순간 떠났고
그래, 하는 순간 곁에 없었다
카시오페이아는 늘 저 혼자 빛났으며
좋은 아내는
좋은 엄마일 뿐이었다
동박새를 사랑한 소녀는 이제 동박꽃을 사랑한다
죽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더더욱 붉게 흔들리는 동박꽃 아래서
편지를 쓴다
아무도 기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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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실』2017-봄호 <신작시단>에서
* 김도연/1968년 충남 연기 출생, 2012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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