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못한 날
오성일
오늘은 이별이 하고 싶어서
나를 멀리 보내주고 싶어서
늙은 역장의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기차역으로
나를 데리고 배웅을 갔습니다
짧은 인사와 가벼운 악수 끝
이내 기차는 들어오고
어깨 야윈 사람 서넛이 타고 내리고
기차는 가을산 모퉁이를 돌아서 갔습니다
바람도 한 줄기 코스모스를 쓸어 눕히며
기차를 뒤따라 사라진 뒤인데
내가 보낸 나는 여전히
승강장 측백나무 곁에 서 있었습니다
기차는 그냥 보내고
굽 낡은 구두의 발길을 이쪽으로 돌려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는
갈잎 같은 중년의 빈손을 잡고
가을만 허우룩이 남은 집으로 돌아온 날,
사무치게도
어떤, 이별이 하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 특히 모든 서정시의 본질적인 특성인 주관성(독백 지향), 일회성, 무목적성 등은 개별 작품들이 회감, 즉 융화融化의 상태를 지향하면서 일정 부분 상쇄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읽는 이를 감흥하면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간다. 어떤 연과, 맥락 속에서 본질적인 결속을 통해 영혼의 깊은 향훈香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정조를 동시대의 정서적 울림으로 크게 증폭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시적 태도이며 수법이다. (백인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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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사이와 간격』에서/ 2017.3.31. <북인> 펴냄
* 오성일/ 경기 안성 출생, 2011년『문학의 봄』으로 등단, 시집『외로워서 미안하다』『문득, 아픈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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