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우체통 안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나/ 강인한

검지 정숙자 2017. 3. 28. 23:40

 

 

    우체통 안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나

 

    강인한

 

 

  수직으로 천년, 돌은 뿌리를 내린다.

 

  빨간 외투를 걸치고

  몇날며칠 귀를 열어두고 있었으므로

  소리의 사연들은 고물거리며 바닥을 기어다닌다.

 

  날개 있는 것들은 모두  한 번씩

  깡통에 던지는 동전처럼 발치에 웃음을 던져주고 갔다.

  초등학교 삼층 난간에 날아 앉는 비둘기 떼,

  측백나무에서 은행나무 우듬지로 날아오르는 직박구리,

  직박구리에 놀라 까무라치는 어린 참새들.

 

  빙글빙글 둥근 양철통으로 만든 운동장 안

  바람의 심줄 찢어 날리는 솜사탕이며

  보랏빛 매지구름에서 일렬종대로 떨어지는 비의 씨앗들이

  온갖 새들의 울음소릴

  천둥소리로 꿰어 오고 있었다.

 

      달이 검은 해를 베어 먹는 밤

 

  저 늙은 우체통 뒤로 가만히 다가가 껴안을 듯

  귀 대고 들어봐, 잘 들어봐.

 

  한숨 소리, 옆구리 풀어 상처를 내뵈는

  땅속 푸른 뱀의 울음소리.

  떨어지는 제 그림자를 냉큼 부리로 물고 가는

  세 발 까마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저 까마귀

  숯불처럼 붉은 천 년의 울음소리 들릴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일찍이 프랑스 문호 위고(V. Hugo)는 『세기의 전설』서에서 "모자이크 안에서처럼, 개개의 돌멩이는 자신의 고유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전체는 하나의 형상을 하고 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다양한 개별성들이 느슨하나마 하나의 통합적 전언을 욕망하면서 결속된 것이 자신의 작품임을 강조한 것이다. 강인한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도 이러한 모자이크 원리를 닮아 있다. 말하자면 그의 시집은 수미일관한 원리에 의해 규율되어 있지 않고, 그때 그때 활성화된 역동적 상상력이 플래시처럼 터져 나오는 빛을 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률적 동어반복이 아니라 시편 하나하나가 다양한 주제와 정조情調를 견지하고 있고, 통일된 화두나 주제로 명료하게 개괄할 수 없는 것이 시집의 요체이자 장점인 셈이다. 여기에 '기록하는 기억'을 향한 그의 오랜 적공積功이 배어 있음은 췌언의 여지가 있을 리 없을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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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튤립이 보내온 것들』에서/ 2017. 3. 15. <도서출판 시와시학> 펴냄

  * 강인한(姜寅翰)/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이상기후』『신들의 놀이터』외 , 전남문학상 · 한국시협상 수상,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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