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벗으면
김지윤
소년은 안경을 보고 있다
안경테에 끼워진 렌즈를 보고 있다
렌즈에 갇힌 사람들은 세상일까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꼈다
매일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비틀거리지만 쓰러지지 않는 법을 연습했다
그렇게 매일 렌즈 속 사람을 보는 연습을 했다
그게 전부였다
원근법을 무시하는 안경의 마법
그 누구도 소년과 눈을 맞춘 적 없었다
소년이기에
소년으로 가능한 일들이었다
때론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빠는 또 뭐가 달라졌을까
그러나 가장 궁금한 건 자신이었다
렌즈는 맑고 투명하고
소년의 눈을 비추지 못하고
사람들은 소년을 보면 늘 졸린 사람 같다고 했다
졸린 건 내가 아닌데
소년은 생각했다
이제 안경도 쉴 때가 된 건가
소년은 안경을 벗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렌즈 밖 세상을 보는 거야
소년의 눈으로 여과되지 않은 풍경들이 꾸역꾸역 들어왔다
눈 안으로 차오르는 풍경이 소년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경을 다시 쓴 것처럼 세상이 일그러졌다
소년은 안경을 쓰지 않는 대신
계속해서 울기로 결심했다
울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눈 안에서 파도가 친다고 믿고 있다 소년은
그래서 지금 그런 거라고
그래도 다시 안경을 쓰진 않을 거라고
소년은 끊임없이 울면서 다짐한다
나는 소년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쓴다
소년의 눈물에 박수를
우리의 안경에 야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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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17-3월호 <신작특집> 에서
* 김지윤/ 2015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