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창호지/ 민용태

검지 정숙자 2017. 4. 6. 21:25

 

 

    창호지

 

    민용태

 

 

  우리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것은

  이 얇다란 종이 하나

  북풍이 칼날을 휘둘러도

  우리는 이 창호지 하나를 방패로

  겨울을 난다

  구름의 포를 뜬 창호지는

  그러나 작은 바람결에도 곧잘 약하게 운다.

  실은 창호지는 눈물에 약하다

  작은 눈물바람에도 가슴이 허문다

  푸른 하늘에 연이 되고 싶었을까

  고명한 선비의 붓 끝에

  영생을 얻고 싶었을까

  창호지에는 연한 풀잎의 힘줄이 드러나 보인다.

  갈기갈기 찢기울지언정 부서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상여 위에 꽃으로 필지언정

  그 자리에서 깨어지지 않는다.

  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깃발이 되어

  펄럭이며 소리치는

  실은 대기의 사촌쯤 되는

  우리네 하얀 마음

  너와 나의 등불을 지키는 것도

  실은 이 얇다란 창호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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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刊文學』2017-4월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대표작 3편> 중에서

  * 민용태/ 1943년 전남 화순 출생, 1968년『창작과 비평』「밤으로의 작업」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시간의 손 』『파도가 바다에게』외, 번역집『한국시선』카라카스에서 출간 ·『김종길 시집』번역 멕시코 출간 외, 평론집『에로티즘 시학』『서양문학 속의 동양』외, 한국시문학상 · 영랑시문학상 외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