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마른 우체통/ 오민석

검지 정숙자 2017. 4. 6. 00:19

 

 

    마른 우체통

 

    오민석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허공에 불렀던가 이제 내가 이

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대가 꽃이 되지 않는다 사기 치지 마라 쓰

레기 같은 씨니피앙들만 온 세상에 너절하구나 꼭꼭 숨은 당신

들 때문에 내 눈만 직경 10센티미터는 앞으로 더 튀어나왔다 푸

른 구름이 전단지처럼 둥둥 떠가는 오후 나는 오직 불안을 완성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처럼, 커피를 반쯤 마시다가, 책을 읽

다가, 전화를 하다가, 드뷔시를 듣다가, 좌불안석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거리를 내 친구 보르헤스가 걸어간다 열기가 그를

감싼다 그는 성스러운 고독에 떨며 시를 썼다 비애의 신열도 그

는 고독하게 앓았다 내일 또 하나의 이름이 내 구강을 떠나 허공

을 울릴 것이다 꼭꼭 숨은 당신을 나는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름뿐인 당신이 봄비 속에서 조용히 초록 혓바닥을 내밀

기를 마른 우체통처럼 우두커니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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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2017-4월호 <신작詩 # 1> 에서

  * 오민석/ 1990년『한길문학』으로 시 부문 · 1993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그리운 명륜여인숙』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