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달린다
김추인
말이 달린다, 갈기에 붙들린 바람이 말 잔등을 치며 별의 가장
자리를 달리는 중이다
가도 가도 서(西)로 길을 내는 철새들의 허공
한 무리의 비늘구름 사이로
태양도 저무는 것을 보류하고 있다, 말이 달린다
바람 높고 조도 낮은 가장자리는 언제나 모퉁이들의 거주지,
우주의 바깥으로부터 백조자리 지나 바람 치는 별의 중심을
향해 타각타각 허공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말이 달린다
성단에서 성단으로 건너뛰며 오래 바라본 겉과 안처럼 홀소리
와 닿소리 한 몸으로 단단해지리라, 말이 달린다
죽어서도 모퉁이가 많은 나는 말을 부리는 시인일 것이다
언제쯤 내 말은 멈출 것인가 핏물 밴 말발굽 하나, 기억과 잊힘
사이에서 수메르의 점토판처럼 해독되다가 말다가 하겠지만
겉과 안 경계에서 내 말은 오오래 광야를 달리며 세상의 바람
을 읽을 것이다, 말이 달린다
- 전문, 시집『오브제를 사랑한』(미네르바, 2017)
▶ 광야를 달리며 세상의 바람을 읽는 유목민(발췌) _ 이연승
이 시에서 시인은 말[馬, 言]의 중의적 의미를 활용하여 자신의 시 쓰기를 세계의 경계에서 "오오래 광야를 달리며 세상의 바람을 읽"어내는 지난한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 말은 "우주의 바깥으로부터 백조자리 지나 바람 치는 별의 중심을 향해 타각타각 허공을 울리는" 소리로 울려 퍼진다. 그리하여 말들이 "성단에서 성단으로 건너뛰"는 데까지 이르게 되면 그 말들은 "오래 바라본 겉과 안처럼 홀소리와 닿소리 한 몸으로 단단해"질 것이며, 그러한 단단함을 확보하게 되면 "겉과 안 경계에서" 광야를 달리며 세상의 바람을 읽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유목민이다. "죽어서도 모퉁이가 많은 나는 말을 부리는 시인일 것"이라는 선언적 진술은 상상력의 진폭을 일상의 공간에서 우주의 공간으로 확대시킨다. 그녀의 언어는 야생의 말들이 드넓은 광야를 질주하며 별의 가장자리를 바라보고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가는 지점을 응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구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녀의 상상력은 무겁고 탁한 세상의 시간을 무화시키며 생명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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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2017-4월호 <특집|김추인|자선시|작품론> 에서
*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행성의 아이들』외 다수 한국예술상 수상
* 이연승/ 1997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생성의 시학』『매혹의 언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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