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사북/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17. 3. 30. 13:02

 

 

    사북

 

    길상호

 

 

  식은 이름을 읊다 일어난 아침

  입술에도 차갑게 눈이 쌓여 있었다

  사북사북, 꿈속 발자국들을 주워 가방에 담고

  나는 사북 행 기차를 탔다

  구름과 함께 딱 한 번 들른 적 있는 곳,

  역사 앞 공중전화박스에 서서

  혼선 중인 당신 목소리를 내려놓고

  멎지 않는 눈발만 멍하니 바라보던 곳,

  지문 속에 말아 넣어둔 낡은 지도를 펼쳐들고

  탄가루 뒤집어쓴 약방 간판이나

  고드름 매달린 다방의 연통을 떠올리면

  기억들은 그 맛이 텁텁했다

  탄광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마다

  기차는 덜컹덜컹 잔기침을 해대고

  나는 사북사북,을 가루약같이 털어 넣으며

  창유리에 맺힌 검은 얼굴을 닦았다

  언제나 과거형의 철로 끝에 놓여있던 곳,

  그러나 폐쇄된 몇 개의 역 이름을 거치는 동안

  결코 사북에 닿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발자국들도 어느 틈에 가방을 열고 나와

  눈구름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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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2017-봄호 <집중조명 / 신작시>에서

   * 길상호/ 2001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모르는 척』『우리의 죄는 야옹』등, 사진에세이『한 사람을 건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