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영규_즐거운 가역반응(발췌)/ 나의 해빙 전후 1 : 박상순

검지 정숙자 2017. 3. 25. 22:23

 

 

    나의 해빙 전후 1

 

    박상순

 

 

  얼음 위에서 나는 자유였다. 아무것도 없

  었고,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거대한 얼음 위에서 나는, 너무 작

  아서 언제나 자유였다. 아무것도 없었

  고, 누구도 지나가지 않는 자유였다.

 

  얼음 위에서 나는 아홉 해를 보냈다.

  얼음의 어둠 속에서도 나는 자유였다.

  어둠만이 있었고, 얼음만이 있었고

  얼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얼음의

  차가운 얼음의 자유였다.

  희뿌연 태양은 얼음의 언덕에서

  사라질 듯 말듯 간신히 떠올랐다.

  밤새 어둠 속에서, 얼음 위에서 나는

  차갑게 얼어붙은 유일한 자유였던 나는

  정오가 되면 얼음 언덕의 좁은

  틈새를 통해 내 얼음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홉 해의 마지막 날

  얼음의 집, 내 얼음의 동굴 끝에서

  얼음의 연인 한 쌍을 보았다.

  나는 너무 작았고, 그들은 너무 컸다.

  그들은 얼음 사과를 만들고, 얼음 나무를 만들다가

  동굴 안에 들어선 나를 발견했다.

  얼음의 사내가 말했다. 얼음의 여자가

  아주 작은 나에게 말했다.

  가야지, 가야 해! 어서, 빨리, 어서! 

 

  순수한 자유였던 나는 어떤 생각도 질문도

  없이, 곧바로 얼음 동굴을 나왔다.

  오직 얼음뿐인 얼음의 길, 얼음의 언덕,

  얼음의 평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직 얼음뿐인 얼음의 바다, 얼음 위를

  달려서, 내가 가야 할 얼음 끝의 집, 내가

  만아야 할 얼음 끝의 인간을 찾아서

  사라질 듯 말듯 아직 남아 있는 태양이

  얼음의 언덕 너머로 사라지기 전에

  달렸다. 나는

 

  얼음뿐인 바다, 얼음뿐인 아침, 얼음뿐인 언덕

  얼음뿐인 밤, 얼음뿐인 나, 얼음뿐인 하늘,

  얼음뿐인 눈, 얼음뿐인 발, 얼음뿐인 손,

  얼음뿐인 고독, 거대한 얼음뿐인 나의 얼음을 건너갔다.

 

  달렸다. 뛰었다. 쉬지 않고 갔다.

  죽도록 달려갔다.

  그래도 얼음뿐인, 얼음의 언덕 너머로 희뿌연

  태양이 사라지기 직전에 나는

  보았다. 얼음 없는 길, 얼음 없는 집,

  죽도록, 죽도록 달리고 달려

  얼음 끝의 길, 얼음 없는 길에 닿았을 떄

  얼음 없는 집 앞에 내 얼음의 발이 닿았을 때

 

  나는 갑자기 두 팔을 들어 수평으로 벌리고

  한 바퀴, 두 바퀴를 돌았다.

  갑자기 타오르는 태양……

  나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얼음도 사라지고, 태양도 사라졌다

  나의 삶도 사라지고 나의 죽음도 사라졌다.

  그렇게

  태양의 마을에서 3개월이 지났고

  아주 작은 나는, 얼음의 끝, 태양 아래서도 자유였다.

  삶도 어벗는, 죽음도 없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

  을 수 없는, 들리지 않는, 나마저도 나를

  느낄 수 없는 뜨거운 자유였다. 불타는 자유였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얼음의 끝.

  아무것도 없었고,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전문-

 

 

  ▶ 즐거운 가역반응(발췌) _ 전영규

  "얼음뿐인 고독, 거대한 얼음뿐인 나의"처럼 이 외로운 적막과도 같은 백색의 이미지가 박상순의 새 아해들에게 감지되는 비국의 컬러다.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기며 엽기적인 배틀로얄을 펼쳤던 싱그러운 녹색 머리 소년들은, 어느덧 백색의 소년이 된다. 수많은 나를 복제하며 질주하던 아해는, 내 안에 머물 줄 알기에 권태로울 줄도 아는 성숙한 아해가 되었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박상순의 최근 시에 유독 "슬픔"이나 "고독"이란 단어가 직접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해빙 이전과 이후, 죽도록 달리고 달려 "얼음의 끝"에 다다른 풍경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곳"에서 "나는 나마저도 나를 느낄 수 없는 불타는 자유"를 느낀다. 그것은 거대한 세상에 혼자 남아 너무 작은 나를 실감하는 존재의 고독이다. 위 시의 "자유"란 자리에 "고독"이라 단어를 넣어도 무과하겠다. 내 안의 수많은 자아의 충돌과 변주를 통해 다다른 사실은 이것이다. 다시 한 번 두려움 없이, 즐겁게 고독해질 또는 자유로워질 준비를 한다. 나를 둘러싼 거대한 얼음이 녹은 후에도, 나의 삶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아단 예전과는 낯선 자유를 누릴 기회가 주어진다. 이상의 구절을 빌리자면, 시인에게 발달하지도, 발전하지도 않아 보이는 이상한 가역반응과 같은 세계는 분노보다는 유희다. 끝없이 질주하면서도 권태로울 줄 아는 아해를 통해 시인은 자아의 유희遊戱와 관조觀照를 적절하게 넘나들고 있다. 해빙 전과 후, 존재의 고독과 자유, 삶과 죽음 사이의 풍경이 너무 가볍거나 허무해지지 않도록, 시인은 자신에게 다가올 봄날이 차라리 고독해지기를(「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바란다.

 

   ----------------

*『작가세계』 2017-봄호 <시인산책/ 신작시/ 박상순론>에서

* 박상순/ 1961년 서울 출생, 1991년 『작가세계』시 부문 등단,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슬픈 감자 200그램』등, 현대시동인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 전영규: 1986년 출생, 2017년《조선일보》신춘문예 펑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