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송기한_견고한 것의 와해와 자유로운 영혼의 추구(발췌)/ 징후 : 강해림

검지 정숙자 2017. 3. 28. 01:01

 

 

    징후

 

    감해림

 

 

  붉은 비가 내렸다

 

  상한 우유에 빵을 찍어먹는 아침 식탁에 백년 후의 조간이 펼쳐져

있다

 

  동맹이라도 한 듯 모든 견고한 것들의 흉곽이 녹아 흘러내리기 시

작했다

 

  만남과 이별이 유리창 하나 사이에서 모호해졌다

 

  어항 속에 근친상간한 물고기들이 늘어나 더 이상 헤엄쳐 다닐 데

가 없다

 

  낡은 피를 쏟아내듯 붉은 것만 보면 훔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달의

습격이 미치게 그리운 날은,

 

  인간의 감정에 내장된 만능 칩 하나로 감정조절이 가능해졌다

 

  쓰레기매립장이 넘쳐나고 썩어도 썩지 않는 대용량의 분노가 필요

했다

 

  장례식장이 장례예식장으로 바뀐 이후로 죽음에 대해 우아하게 말

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싱크홀 속으로 엄마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희망이라는 벌떼가 자기전복을 위해 날아들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날들이 도래할 것이다

    - 전문, 『현대시』2016. 5월호

 

 

  견고한 것의 와해와 자유로운 영혼의 추구(발췌) _ 송기한

  이 작품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인용시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다. 어쩌면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이번 현장시의 근본 의도가 이 작품에 모두 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매우 뚜렷하다고 하겠다. 이를 몇 가지 층위로 구분해서 나눠보면, 우선 시인이 즐겨 시적 의장으로 구사하고 있는 이른바 경계의식의 해체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러한 작업은 여러 각도에서 시도되는데, 먼저 등장하는 것이 시간의 해체이다. 이 부분은 2연에서 드러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시간성이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식이 그러하다. '상한 우유'가 과거라면 '빵을 찍어먹는 아침'은 현재이며, '백년 후의 조간신문'은 미래이다. 이런 동시성의 수법이 모더니즘의 주요 의장이고, 또 자의식의 해체와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시인의 의도는 이와 무관한 경우이다. 시인에게 동시성은 경계지우기의 전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는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할 정도로 오버랩 되는데, 가령, "만남과 이별이 유리창 하나 사이에서 모호해졌다"라든가 "어항 속에 근친상간한 물고기들이 늘어나 더 이상 헤엄쳐 다닐 데가 없다"는 것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맹이라도 한 듯 모든 견고한 것들의 흉곽이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거나 "장례식장이 장례예식장으로 바뀐 이후로 죽음에 대해 우아하게 말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도 그 연장선에 놓이는 경우이다.

 

     ------------------

   *『시사사』2017. 1-2월호 <우리 시의 현장>에서

   * 송기한/ 문학평론가, 서울대 및 동대학원졸, 대전대 국문과 교수, 저서『1960년대 시인연구』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