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자서전
최승호
나는 얼음학교를 다니면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냉동공장
이었다. 아버지, 선생, 독재자, 하느님에 이르기까지 얼음생산에
열심이었다. 결빙으로 딱딱해진 스무 살 이후에는 눈물샘마저 얼
어붙었다. 나는 얼음의 성이었다. 하얀 빙벽을 두른 고독으로 얼음
의 자아를 고집했다. 아무도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사랑의
불길조차 나에 닿으면 꺼져버렸다. 빙벽의 시간 속에서,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거만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거만하다
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얼음동굴의 얼음도끼들, 내 수염이었던 고드
름들, 결빙의 세월을 길게도, 나는 살아왔다. 빙하기로 기록해 둘만
한 자아의 역사!
-전문-
▶물질과 더불어 구현되며 물질의 배면인 '空'_ 문혜원
최승호는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실험 의지로 충만한 시인이다. 이 특징들은 대부분 그의 '안'에서 촉발된다. 자칫 이 말은 그의 시가 자폐적이라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폭력에 대한 고발, 자본주의 비판, 생태주의 표방 등 사회적 관계와 삶의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안에서 촉발된다'는 것은, 이러한 그의 관심사들이 실천적인 의지에서 비롯된다기보다 개인적인 발견과 깨달음에서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그는 대상을 어떤 맥락에서 파악할 것인가를 유념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언어로써 표현할 것인가를 고심한다. 그것들은 등가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시적인 주제 또한 다양하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하거나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적이다. 그것들은 단절넉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문혜원/ 문학평론가, 아주대 교수, 본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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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시대』 2017-봄호 <문혜원 교수의 시인 깊이 읽기/ 자선시> 에서
* 최승호/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7년『현대시학』전봉건 추천으로 등단, 시집 『대설주의보』『허공을 달리는 코뿔소』외, 김수영 문학상 · 미당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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