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백과 고백 사이/ 구광렬

검지 정숙자 2017. 3. 23. 13:00

 

 

    고백과 고백 사이

     - 밸런타인데이, 투 섬 플레이스에서

 

    구광렬

 

 

  누군가 기원전紀元前의 말 한 마리를 몰고 와선 그를 싣고 떠나줬

으면 했다. 도무지 부활의 희망이나 의지를 보여주지 않던 그 성당

의 예수상, 아니 예수.

  기쁜 날에도 그를 보면 슬퍼졌다. 복도를 지날 때면 피를 철철 흘

리는 모습이 하 애처로워 손발에 박힌 못이라도 빼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난, 그 성당을 오래 다녔다. 술을 마시고 포커를 치는

예수보다 더 신 같던 사제 때문이다

 

  쿠바 산 시가를 빨다가 위스키가 담긴 콜라 병을 들이키며 그가

한 말: 죄는 물론이고 벌 또한 인간의 짓이다. 신의 짓이 아니다.

세 번씩이나 부인해줄 베드로 같은 신자는 못 뒀지만 히든카드를

들여다보는 그의 쪽 째진 눈망울에선 차라리 부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 신부, 예수보다 먼저 세상을 떴고 지금까지

부활했다는 소문은 없다

  그럼에도 난, 계속 성당을 다녔다. 마리아보다 더 성모聖母 같던

수녀 때문이다. '형제님, 형제님'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엔 내 어머

니에 결핍됐던 살가움이 들어있었다

 

  내 나이 열일곱, 마침내 그녀를 사랑했다. 검은 수녀복은 총천연

색으로 보이고 달력엔 성당 가는 날이 유난히도 빨갛게 칠해졌다

  하나 짝사랑이었다. 그녀, 나보다 예수, 아니 예수상을 더 사랑했

다. 날 보곤 웃었지만 그를 보곤 울었다

 

  지금 난, 듬뿍 얹힌 휘핑크림 너머 그 성당을 바라본다. 마당엔

여전히 석녀石女 마리아가 보이건만 복도엔 그가 있을까? 그 그림

자 말이다. 회랑 끝까지 죽 늘어지던 검은 뿌리 같던, 도굴된 시체

를 세워 놓은 듯해 다시 묻어주고 싶던.

  아니, 그 또한 신이었을 거다. 신 없으면 기원후紀元後 인간이 신

이 되려 드니까

  혼자 있어도 함께 있는 느낌, 그래서 난 이곳을 즐겨 찾는다

  그래, 그녀 또한 날 사랑했을지 모른다. 에스프레소의 쌉싸래함

과 녹아드는 생크림의 단맛이 어우러지고 있잖아

 

 

    ----------------

  *『시인시대』 2017-봄호 <신작시>에서

  * 구광렬/ 1986년  멕시코 문예지『EI Punto(마침표)』에 시 「켓찰코아틀(Quechalcoati)」등을 발표하고 · 국내에선 오문학상 수상과 함께『현대문학』에 시「들꽃」을 발표함. 시집『슬프다 할 뻔 했다』, 스페인어 시집 『La tierra mas alta que el cielo, 하늘보다 높은 땅』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