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파두/ 최춘희

검지 정숙자 2017. 3. 21. 08:48

 

 

    파두*

 

    최춘희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시간이 정지된 듯 상점들의 셔터는 닫혀 있다

  어둠은 불면의 그림자를 끌고 창밖에서 서성이고

  나는 밤이 오는 것이 두렵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죽은 자들이 좀비처럼 떼 지어 몰려와  

  사방에서 벽처럼 나를 에워싸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튕겨나간다

  검은 심연의 바깥으로

 

  죽음보다 삶이 무거운 유형자의 밤

  육신의 통증을 작은 약병들에 옮겨 담는다

  아름답고 화사한 빨, 주, 노, 초

  둥글고 길고 네모난 알약들

 

  세상의 나침반들이 죄다 거꾸로 돌기 시작한 그날

  당신은 한줌 재로 남겨져 땅에 묻히셨다

 

  아버지,

  모든 기억을 지우면서 무덤 위에 검은 눈이 내려요

  봉인된 시간의 병뚜껑을 따면

  되돌릴 수 있을까요

 

    * 파두: 포르투갈 전통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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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17-봄호 <예술가 신작시> 에서

   * 최춘희/ 199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세상 어디선가 다이얼은 돌아가고』『시간 여행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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