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정남_시는 무엇을 말하는가(발췌)/ 접속사 : 정진혁

검지 정숙자 2017. 3. 17. 03:02

 

 

    접속사

 

    정진혁

 

 

  그리고를 손에 들고 조금 울었다

  눈 코 입을 기억하는 일은 슬펐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난보다 더 질긴 접속사를 남기고  갔다

  도처에 상처는 늘어나고 그 흉터마다 접속사 하나씩 자랐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가난은 적절한 접속이었고

  그러므로 가난은 간절한 접속이었다

 

  왜냐하면을 덥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상처는 그러나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늘 우리 곁에서 영역을

넓혔다

  미루나무 끝까지 접속을 밀어 올리기도 하고

  고양이의 눈 속에서 그런데를 찾아내기도 하고

  빨랫줄에 더구나를 말리며 변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언저리만 흔들릴 뿐

  물려주고 간 것이 접속사인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접속이 안 되는 생 속에서 나는

  그러나 추잡한 속셈의 기다림일 뿐이고

  그래서 알아야 할 것보다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해 여름 접속의 숲에서

  우리는 우리를 거부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사루비아는 빨강을 버렸다

  불타는 칸나처럼 누나는 집을 나갔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접속

  그래서

  아버지의 전생이 우리에게 왔다

 

  예컨대 접속은 자꾸 끊어지기만 했다

  내게 남은 접속사는 상처가 다음 상처를 부르는 데 사용될 뿐이었다

 

  접속사를 껴안으면 피가 났다

  접속사는 표정을 짓지 않았고

  우리는 자꾸 혼자가 되어 갔다

 

  접속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버지는 갔다

  접속사로 물러들일 사람 하나 없이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그러므로 떠돌기만 했다

     -전문, 『문예바다』2016. 겨울호

 

 

  ▶ 시는 무엇을 말하는가(발췌) _ 김정남

  이 시는 접속사라는 문법의 단위를 생의 순간순간과 연관지어, 이를 하나의 구체적인 표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부친이 남기고 간 유산으로서의 가난과 상처가 어떻게 남은 자들에게 질기게 이어지는지 성찰한 이 시는 "그리고"라는 나열의 기능을 지닌 접속사를 시작으로 그 부채의식을 서술해 가고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은 슬프지만 그가 남긴 가난은 "그러나"라는 역접의 접속사처럼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흉터는 늘어만 간다. 남은 자들에게 "그리고"는 가난과 성처의 연속을, "그러므로"는 그것의 순접이라는 숙명을 의미한다./ 남은 자들은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의 상처의 대물림 과정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변화를 갈망한다. 그러나 언저리만 흔들릴 뿐, 그가 물려주고 간 가난과 상처의 접속은 끊이지 않는다. 생은 "추잡한 속셈의 기다림일 뿐"이어서 이들은 스스로의 생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대학 진학의 포기와 누이의 가출로 이어진다. 결국 거부할 수없는 "아버지의 전생"은 "그래서"로 우리에게 고스란히 순접 된다. 따라서 화자에게 남은 접속사는 상처가 다음 상처를 부르는 것으로만 기능한다./ 의 순간들을 이어주는 "접속사를 껴안으면 피가 났"고 ""그리고"우리는 자꾸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그리고"로 남겨진 생의 숙명을 "그러나"로 맞서고 싶지만 결국 "그래서", "그러므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들. 시인은 접속사라는 문법의 기능을 생의 비극적 운명을 형상화하는 데 바쳤다. 언어의 개념적 기능을 삶의 실체적 국면으로 전환시킨 시인의 상상력이 곡진하게 펼쳐진다. 결국 생이란 "그리고"와 "그래서"와 "그러므로"의 현실에서 "그런데"를 찾아내고 "그러나"로 맞서는 일이다. 그것이 고작 미미한 떨림일지라도 모든 생의 몸부림은 진동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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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7-3월호 <월평_시시는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 김정남/ 2002년 『현대문학』평론,  2007년 《매일신문》신춘문예 소설 등단, 문학평론집『꿈꾸는 토르소』외, 장편소설『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외, 현직 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