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청우_ 다시 읽기/ 우리가 화폭의 일부라면 : 박찬일

검지 정숙자 2017. 3. 17. 22:58

 

 

    우리가 화폭의 일부라면

 

    박찬일

 

 

  우리가 만약 가상 세계에 살고 있다면 가상 세계의 우리가 그 일부인 관

계로 가상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만약 우주에 살고 있다면 우주

의 우리가 그 일부인 관계로 우주에 관해 말할 수 없다. 우리가 가상 세계

바깥쪽에 관해 말하기가 곤란하다. 우주에 관해 말하는 것은 우주 바깥쪽

을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주 바깥쪽에 관해 말하기가 곤란하다. 하위 체

계가 상위 체계에 관해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화투가 화투놀이에

관해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7.1-2월호

 

 

  다시 읽기_ 김정남

  어떤 발화든, 그것은 상대적인 공간론을 전제하고 있다. 어떤 화자든 모종의 위치에서 그에 따른 관점perspective에 입각하여 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절대적인 관점'은 불가능하다. 만일 그러한 관점을 옹호하려면 필연적으로 편재遍在하면서도 '하나'인 관점을 먼저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관점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세계/세계 바깥'의 구도로 확장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 세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세계를 '대상'으로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대상이 '대상'일 수 있으려면 '거리'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 자체가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만일 그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려면 '세계 바깥'에서의 발화를 상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가? 데리다J. Derrida의 말을 빌리자면 '텍스트의 바깥'에는 결국 텍스트가 있고, 따라서 '텍스트밖에' 없듯이, 세계의 바깥에는 결국 세계만이 있어서 '세계밖에' 없다. 박찬일의 위의 시에서 이러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우리가 만약 가상 세계에 살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만약 우주에 살고 있다면"이라는 두 가지 가정을 말한다. 전자와 후자는 모두 '만약'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무게는 사뭇 다르다. "우주에 살고 있다"는 말은 "만약"이라는 가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일상적 어법에서는 그렇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동일한 자리에 놓여 있는 전자의 "가상 세계" 역시 이상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가상 세계"와 모종의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우주에 관해 말할 수 없"는 관계로 우리가 가상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시는 마지막 행의 [화투가 화투놀이에 관해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집약된다. 이 문장으로 인해 우리(화투)는 우리의 행위(화투놀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층위로 이행한다. 시는 시쓰기에 대해서 말하기 어렵다. 이 시 또한 그렇다. 박찬일의 시는 바로 그러한 이상함을 즐긴다. ▩

 

    ----------------

   *『이상』2017-봄호 <다시 읽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