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전문-
▶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 곽재구론(발췌) _ 김관식
시공간적인 배경은 겨울눈이 하얗게 내리는 날 밤의 시골 간이역이다. 그가 시집의 후기에서 밝힌 바대로 "많은 순간 절망보다는 희망을, 고통보다는 사랑을 노래하기 위하여" 쓴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묘사적인 진술로 서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마치 그 삶의 현장에 있는 서민의 아픔을 생생하게 공감하고 동정심을 일으키는 정서를 환기시켜 놓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분위기는 톱밥 난로의 불빛, 담배 연기, 잔 기침소리가 어우러진 간이역 대합실 풍경과 지나간 열차에 대한 회상적인 분위기와 아울러 유리창 밖의 눈이 내린 겨울밤의 서정적인 분위기 등이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나 또 다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떠나는 서민들의 애환의 장소로서의 "사평역"은 80년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서민들이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곽재구 시인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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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가온문학』2017-봄호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 / 곽재구론>에서
* 김관식/ 1976년 《전남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 입상, 1979년 월간 『아동문예』동시 천료, 1998년 계간『자유문학』으로 시 부문 신인상, 동시집 『토끼 발자국』외, 시집『백수의 하루』외, 문학평론집『현대동시인의 시세계』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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