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탁자
정숙자
아직, 또 다른 지구는 없다고 한다
발 닿는 곳마다 경쟁이 붙고
심장 근처엔 비극이 산다
약육강식,
가차 없는 질서
그런데도 우리는 이 구석을 ‘아름답다’ 덮는다
멀리서 보면 푸른빛이라 한다
약육강식은 그렇다 치고, 강육약식(强肉弱食)도 엄연히 존재하는 비
탈을 우리는 먹어야 한다. 지금 움직이는 우리 모두는 아예 태어나지
못했거나 앞서 사라진 자보다 훨씬 강했다는 검증이지만, 어느 누구
도 고통이 멎지 않는다.
썩은 것은 썩어서 썩고, 안 썩은 건 안 썩어서 썩는다
달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희소식인가. 거기 토끼가 있
었다면 나는 달이 떠오를 때마다 눅눅했을 것이다. 토끼가 저녁은 때
웠는지, 낮 동안 친구들과 사이좋게 뛰놀았는지, 수토끼와 암토끼가
갈등을 겪고 있지나 않은지,
풀은 넉넉한지
춥지는 않은지
이슬들은 깨끗한지
천적(天敵)이 노리는 건 아닌지
빨간 눈동자가 검어지지는 않았는지
뿔 달린 돌연변이가 나오지는 않았는지
똥 천지가 되어 흰 털이 개털이 되지는 않았는지
생명이란, 생활이란 이 모든 섬유를 거느리는 게 아닌가
생각의 극장에서는 어떤 초기화도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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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티카』 2017-상반기호 <시에티카 초대시>에서
* 정숙자/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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