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엄마의 배추/ 이승진

검지 정숙자 2017. 3. 9. 13:17

 

 

    엄마의 배추

 

    이승진

 

 

  그 해

  엄마는 배추를 묶지 않고 그냥 가셨다

 

  서리가 올 무렵

  다른 집은 모두 배추를 묶는데

  유독 우리집 배추만 묶지 않고 그냥 두었다

  동네 사람들이

  왜 묶지 않느냐고 따지면

  엄마는 슬그머니 웃고 계셨다

 

  속이 너무 꽉 차면 맛이 없다며

  너무 단단하면 틈이 없다는 말씀

  아들에게만 일러주셨다

 

  엄마는 아들을 회초리로 때리며

  야무지게 키우셨지만

  끝내 묶지는 않으셨다 아니 못하셨다 엄마는

  알차지 못하고 똑똑하지는 더욱 못한

  어눌하고 속이 텅 빈 조선 배차 한 포기

  이 풍진 세상에 풀어놓고 그냥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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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티카2017-상반기호 <시에티카 초대시>에서

  * 이승진/ 경북 상주 출생, 2004년 시집『사랑박물관』으로 등단, 시집『엄마 붓다』, 산문집『떠난 세월 남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