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채호기(蔡好基)
직육면체 콘크리트 단면 아파트 안
네모 창틀에 불이 켜지면 훤히 보인다,
그들 각자의 네모난 삶,
소리는 들리지 않아 마치 하나의 스크린에
수십 개의 무성영화들이 동시에 상영되는,
빛의 강약이나 점멸 등이 천 개의 테레비전을
쌓아 올린 백남준의 <다다익선> 앞에
선 것처럼 빛과 색깔의 광휘에 번쩍이는,
변화에 홀린 신기함에 놀란 아이의 눈들이다.
그때는 몰랐다.
어디 적당한 높이의 언덕이나 옥상에 서서
투명한 유리 진열장에 전시된 삶들을
바라볼 때 나는 가끔 그들의 내밀한
삶을 삿된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는 것인가,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려는 못된
관음증적 버릇을 가진 도착적 인간?)
그러나 바로 지금 무선으로 광속으로 알아차린다,
나는 내 머릿속의 불 켜진 방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기에 있으려 애를
쓰지만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불가능을 품고,
도무지 안 되는 풀 길 없는 꿈 안의 사건들을 겪고 감지하면서
그게 꿈인지도 모른 채 진땀 흘리는 꿈꾸는 사람처럼.
그 방들 중에는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다소 풀린
넥타이로 현관에 들어서는 사내가 있고, 주방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커피포트를 올리는 여자가 있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여인이 옆 테이블에 신문 펼쳐
든 남자에게 이야기하는 방이 있다.
한 방에는 소년이 있고 그 옆방에는 소녀가
있다. 내 눈은 자동적으로 소녀의 방을 향한다. 소녀는
막 보던 책을 책상 위에 펼쳐 덮고 의자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간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거나
화장한 걸 기대했겠지만 소녀는 입을 벌려
말하는 듯하다, 거울에 비친 그 자신에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으려 애쓴다.
그 수많은 불 켜진 방들 중에
왜 유독 소녀의 방에서 시선이 머무르는 걸까?
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 애쓸까?
아니다, 사실 나는 아직 불 켜지지 않은
검은 방들에,
나도 모르게 더 깊이 끌린다. 이 모든 방들이
기억을 펼쳐놓은 광경이라면 저 검은 방들은
망각인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인가?
죽음인가?
아무리 기다려도 저 검은 방은 불 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스위치를 올리기만 하면 될 것이지만
아무리 애써도 나는 여기에 있다,
어느 미지근한 한여름의 저녁에
불 켜진 방보다 검은 방에 애타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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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2017-3월호 <시>에서
* 채호기/ 1957년 출생, 1988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지독한 사랑』『레슬링 질 수밖에 없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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