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옮겨가는 기억/ 안은숙

검지 정숙자 2017. 2. 25. 19:02

 

 

    옮겨가는 기억

 

    안은숙

 

 

  느티나무 아래 아이와 놀았다

  옮겨가는 것은 몇 평 햇볕이 아니라 그늘이었다

  뒤뚱거리는 보폭으로 느티나무는

  더운 여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울었고

  떠올린 기억은 웃는다

  기억은 넘어질 수 있고 울 수도 있다

  꽃들이 무릎을 깨고 붉은색을 흘릴 수도 있다

 

  누군가 부른다면 이미 나를 지나친 이름

  부를 때마다 뒤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기억은 그쯤에 있는 것이다

 

  엄마의 기억은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어려지고, 아이의 몸은 커진다

 

  큰 나무에서 옮겨가던 여름,

  닮는다는 것은 서로 멀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오래 기억하려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계절을 너에게 줄게

  낯익은 엄마를 너에게 줄게

 

  오전은 편모슬하 오후는 편부슬하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낯모르는 너

의 아이와 놀아주렴

 

  아이의 등으로 자라는 엄마의 시절, 그 기억들

  천천히 굽어질 관계들

  기억은 옮겨가는 것으로 퇴화되는 것이다

 

     --------------------

   *『시에2017-봄호 <시에 시>에서

   * 안은숙/ 2015년『실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