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가는 기억
안은숙
느티나무 아래 아이와 놀았다
옮겨가는 것은 몇 평 햇볕이 아니라 그늘이었다
뒤뚱거리는 보폭으로 느티나무는
더운 여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울었고
떠올린 기억은 웃는다
기억은 넘어질 수 있고 울 수도 있다
꽃들이 무릎을 깨고 붉은색을 흘릴 수도 있다
누군가 부른다면 이미 나를 지나친 이름
부를 때마다 뒤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기억은 그쯤에 있는 것이다
엄마의 기억은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어려지고, 아이의 몸은 커진다
큰 나무에서 옮겨가던 여름,
닮는다는 것은 서로 멀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오래 기억하려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계절을 너에게 줄게
낯익은 엄마를 너에게 줄게
오전은 편모슬하 오후는 편부슬하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낯모르는 너
의 아이와 놀아주렴
아이의 등으로 자라는 엄마의 시절, 그 기억들
천천히 굽어질 관계들
기억은 옮겨가는 것으로 퇴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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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2017-봄호 <시에 시>에서
* 안은숙/ 2015년『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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