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
정진혁
나는 어느 생의 방파제에서 떨어졌다
실업이 자꾸 나를 밀었다
어깨를 가만히 세우면 어긋난 각들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떨어진 어깨에 모난 말들이 터를 잡았다
깨진 것들은 왜 각진 얼굴을 하는가
수박은 박살이 나고 병은 깨지고 그해 여름도 산산히 부서졌다
둥근 것들이 각이 되었다
팔을 들었다 내릴 때마다 각들이 서로 찌르는 소리가 났다
그동안 너무 오래 서성거렸다
걸음걸이가 세모다 표정이 세모다
몸이 변하면서 마음에도 세모가 자라기 시작했다
실업은 질기고 캄캄했다
밤마다 도처에 머물던 각들이
일제히 어깨로 달려와 수근거렸다
나는 말수가 적어졌고 대신 각들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떨어진 각도를 지우기 위해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나를 놓치고 시간은 까맸다
죽은 숫자들이 우글거리는 달력을 떼어 부채질을 했다
그해 여름의 날짜들이 떨어지며 각이 되었다
-전문-
▶ 추천사유(발췌) _ 강성남
각들이 들어와 사는 어깨는 아프다. 생존으로부터, 생활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어깨가 각을 세우게 한다. 정진혁 시인의 '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는 화려한 수사도 비유도 없다. 그러나 정직하게 읽히는 시이다. '각'은 단순히 상처로 기인한 방어막만이 아닌 시인이 본질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실존적 매개체로 보인다.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서의 각이 아닌 그것을 딛고 일어서려는 '희망'으로서의 각 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이 시를 추천한다.
▶ 추천사유(발췌) _ 김분홍
'나는 어느 방파제에서 떨어졌다'고 시작하는 시의 서두가 파괴력이 있다. 이 문장을 읽다 보면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모호한 질문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화자는 '실업'이라는 다소 진부한 서정과 모던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실업 주변에 있는 수박 · 병 · 여름 등 인접성의 명사를 배치함으로써 '은유에서 환유로' 시 쓰기에 천착했던 오규원 시인의 시작법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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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17-봄호 <제8회 시산맥 작품상 후보>에서
* 강성남/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 김분홍/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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