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끝
김상미
이루어지지 않은 내 연애 사이로 장미꽃이 진다
세상에 열흘 붉은 꽃은 없다더니 장미꽃이 진다
나는 무작정 아무 차나 타고 내달린다
한여름 땡볕에 산 채로 불타던 장미꽃
그 새빨간 단말마 사이로 한없이 무정한 사람들의 뒷모습이
자동차 바퀴처럼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풍경들을 지나
더더 무심한 곳으로 더더 서러운 곳으로
뒤돌아보면 장미의 나날들이란 얼마나 왜소한가!
장미는 장미라서 장미다…로 시작되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처럼
얼마나 건조한가!
아무리 향 좋은 소스를 치고 양념을 섞어도
가슴속에선 肺 없는 쓴 웃음만 날리고
자꾸만 예상을 빗나가는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집착은
고단하게 차창 밖만 바라보고 바라보고
돌이켜보면 장미의 나날들이란 얼마나 그릇된 관습인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지고 납작해질 때로 납작해진
내 심장만 무자비하게 개봉당한 채
나는 바라본다, 장미의 끝!
종로에서도 신도림에서도 명동에서도 신촌에서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로맨스 무리들에 짓밟혀
놀란 나방 떼처럼 뿔뿔이 흩어지는 새빨간 꽃잎들!
어딜 가도 장미는 이미 다 지고 없는데
-전문-
▶ 추천사유(발췌) _ 권순해
김상미 시인의 '장미의 끝'은 슬픈 이야기를 장미의 몸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이루어지지 않는 내 연애 사이로 장미꽃이 진다', '세상에 열흘 붉은 꽃은 없다더니 장미꽃이 진다'고 거듭 강조한 것에서 삶의 기억을 섬세하게 구성하고 지나간 연애를 환기하는 시인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무작정 차를 타고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풍경들을 지나고, 더더 무심한 곳으로 더더 서러운 곳으로 내달리며 상처를 견딜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시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아무리 향 좋은 소스를 치고 양념을 섞어도',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지고 납작해질 대로 납작해진' 이루어지지 않는,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연애의 순간을 떠올리며 슬픔을 다스린다./ '왜소'하고 '건조'한, 연애의 날들을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상처를 추스르고 견디며 장미의 끝을 긍정하는 시인을 주목한다. '심장만 무자비하게 개봉당한 채' 안타깝게 흘러간 날들을 돌아보는, '어딜 가도 장미는 다 지고 없는' 운명적인 고백이 마음에 더 깊게 스민다.
▶ 추천사유(발췌) _ 정연홍
한여름 땡볕에 피는 장미꽃을 새빨간 단말마라고 한다. 시적 화자는 아마도 열렬한 사랑을 거짓말쟁이 남자와 속삭였나 보다. 뒤돌아보면 장미의 나날들이란 얼마나 왜소한가. 열렬했던 붉은 사랑도 해가 지면 다 부질없는 일순간의 헛됨을 깨닫게 된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말했던 것처럼 장미는 장미라서 장미이며, 장미라서 붉다. 또한 장미의 나날들을 그릇된 관습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성을 만나고 본능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무자비하게 심장까지 개봉한다. 그것이 얼마나 속물적이고 본능적인지는 시적 화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인 사랑을 찾게 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이 일순간의 장미꽃처럼 붉고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장미꽃이 일 년 내내 밤마다 피는 시내는 젊은 사람들로 붐빈다. 나방 떼처럼 밤에 피는 장미를 찾아 모여드는 청춘들. 붉고 아름다운 장미꽃이야말로 한순간 시절이 지나면 부질없는 일들임을 깨닫게 된다. 끝없이 밀려드는 로맨스 무리들. 그들의 발아래 짓밟혀지는 새빨간 꽃잎들.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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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 2017-봄호 <제8회 시산맥 작품상 후보>에서
* 권순해/『시산맥』특별회원
* 정연홍/ 200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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