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놀이
황희순
처음부터 우리 사이엔 날선 칼이 놓여 있었지. 서로 넘나드는 발자
국에 피가 묻어났지. 나란히 누워 마주보면 이빨 사이로도 피가 스몄
지. 그 피 서로 핥아주며 낄낄거렸지. 너의 외로움과 나의 즐거움이 부
딪히면 불똥이 튀었지. 손만 잡아도 터지는 상처는 꽃을 피웠지. 둘이
머문 들판은 언제나 축제장이었지. 불꽃 낭자한 축제에 정신이 팔려
피를 몽땅 낭비해 버렸지. 그 겨울, 우린 껍질만 남아 바람에 밀려 다니
다 사라졌지. 살고살고 또 살아도 어김없이 혼자라도 다시 살고 싶어
지는 12월, 오래 숨겨두었던 마지막 남은 피를 꺼냈지. 새싹이 봄에만
돋는 건 아니었지.
---------------
* 『작가마당』2015-상반기호 <신작시>에서
* 황희순/ 충북 보은 출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미끼』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 정진혁 (0) | 2017.02.21 |
|---|---|
|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박귀근 (0) | 2017.02.19 |
| 세기말의 연인들에게/ 김하늘 (0) | 2017.02.17 |
| 박현수_생의 시간, 체온의 시간 그리고 시형의 문제(발췌)/ 가을 : 김일연 (0) | 2017.02.12 |
| 가창력/ 홍지호 (0) | 2017.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