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수혈놀이/ 황희순

검지 정숙자 2017. 2. 18. 11:14

 

 

    수혈놀이

 

    황희순

 

 

  처음부터 우리 사이엔 날선 칼이 놓여 있었지. 서로 넘나드는 발자

국에 피가 묻어났지. 나란히 누워 마주보면 이빨 사이로도 피가 스몄

지. 그 피 서로 핥아주며 낄낄거렸지. 너의 외로움과 나의 즐거움이 부

딪히면 불똥이 튀었지. 손만 잡아도 터지는 상처는 꽃을 피웠지. 둘이

머문 들판은 언제나 축제장이었지. 불꽃 낭자한 축제에 정신이 팔려

피를 몽땅 낭비해 버렸지. 그 겨울, 우린 껍질만 남아 바람에 밀려 다니

다 사라졌지. 살고살고 또 살아도 어김없이 혼자라도 다시 살고 싶어

지는 12월, 오래 숨겨두었던 마지막 남은 피를 꺼냈지. 새싹이 봄에만

돋는 건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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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마당』2015-상반기호 <신작시>에서

 * 황희순/ 충북 보은 출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미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