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맹문재_김명순 시의 주제(발췌)/ 저주 : 김명순

검지 정숙자 2017. 2. 17. 01:34

 

 

     咀呪

 

 

    김명순(1896-1951, 55세)

 

 

  길바닥에, 구을느는사랑아

  주린이의 입에서 굴러나와

  사람사람의 귀를흔들엇다

  『사랑』이란거짓말아.

 

  처녀의가심에서 피를뽑는아귀야

  눈먼이의 손길에서 부서져

  착한녀인들의 한을지엿다

  『사랑』이란거짓말아

 

  내가 밋업지안은 밋업지안은너를

  엇던날은만나지라고 긔도하고

  엇던날은 맛나지지말나고 념불한다

  속히고 또 속히는단순한 거짓말아. 

 

  주린이의 입에서 굴너서

  눈먼이의 손길에 부서지는것아

  내마음에서 사라저라       

  오오 『사랑』이란거짓말아!

     -전문-

 

 

  ▶ 김명순 시의 주제(발췌) _ 맹문재

  "처녀의가심에서 피를 뽑는 아긔야/눈먼이의 손길에서 부서져/착한녀인들의 한을 지엿다/『사랑』이란거짓말아!"라고 토로하고 있듯이,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사랑"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여실하게 그려놓고 있다.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사랑은 결코 인격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이룰 수 없음을, 여성인 자신이 처한 형편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처녀의가심에서 피를 뽑는 아귀야"라고 첫 행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또한 "주린이의 입에서 굴너서/눈먼이의 손길에 부서지는것아"라고 했듯이, 사랑이란 어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사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베벨이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여성에세 불리하게 되어 있는 모든 억압적 조건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진단했듯이(정의숙,「여성 해방 운동의 이념」,『여성학』,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8, 20쪽) "주린이의 입"의 상황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랑을 낳게 하는 조건이다. 따라서 사랑은 입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행동이 함께할 때, 나아가 남녀 간에 인격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다. / "사랑"이란 어떤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마치 "길바닥에, 구을느는" 것처럼 각자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대상이다. "속히고 또 속히는단순한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엇던날은맛나지라고 긔도하"게 되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대상인 만큼 책임이 요구되는 것이다. 주체적이지 못하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김명순은 그 점을 여성으로서 인지하고 거짓 사랑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또 지우고 있는 것이다. 결코 남성에게 종속되는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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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 연구총서 47『여성성의 시론』에서/ 2017. 1. 25 발행

  *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론집『한국 민중시 문학사『여성시의 대문자』등 다수, 편저 『박인환 전집』『김명순 전집-시, 희곡』외, 공편『김후란 시 전집』등, 시집『먼 길을 움직인다』『기룬 어린 양들』등. 현직 안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