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맹문재_김기림의 문학에 나타난 여성 의식(발췌)/ 고전적인 처녀가 있는 풍경 : 김기림

검지 정숙자 2017. 2. 19. 23:47

 

 

     고전적인 처녀가 있는 풍경

 

     김기림(호:편석촌, 1908~미상/ 6.25때 납북됨)

 

 

  할머니: 이애야 그년석이 언제 도라온다고 그러니?

            바다를 건너서도 사흘이나 불술기(汽車)를 타고 가

            는 데란다

  처   녀: 그러치만 그이는 꼭 도라옵니다.

  할머니: 무얼 도라온다구 그러니

            녯날부터도 江東군이란 간날이 막날이란다.

            그놈만 밋다가는 조흔시절을 다노친다.

            아예 내 말대로 마음을 돌려라.

  처  녀: (초마자락으로 눈을 가린다.)

            꼭 도라오신다고 했는데요. 十年이라도 기다려야하지

            요. 다른 데로 옴겨안즐 몸이 몹됩니다.

  할머니: (새빨개진 얼골을 좀보시오.)

            무얼 엇저고 엇재? 그러면 그놈에게 몸을 허락햇단말

            이냐?

  처  녀: 아니 그런 일은 없어요.

  할머니: (담배ㅅ대를 다시 집는다.)

            그러면 그러치 아모일도 없다. 내 말대로 해라.

  처  녀: (동글한 주먹이 입술가의 눈물을 씻는다.)

            그러치만 할머니 그러치만.

  할머니: ?

  처  녀: 나는 그에게 마음을 주어보냇서요. 

             -전문-

 

 

    김기림의 문학에 나타난 여성 의식(발췌)_맹문재

   위의 작품 은 1933년 5월호『신동아』(제3권 제5호)에 발표한 것인데 시작품의 형식이 연극 대사와 같을 정도로 상당한 실험성을 띠고 있다. 물론 이전 시대에 프로문학에서 대중화론의 방법으로 쓰인 슈프레히코르(sprechchor)의 형식이 있기도 하지만, 김기림의 여성 의식의 전위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 위의 작품에서 "처녀"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애인을 기다리고 있고 "할머니"는 그렇게 기다리다가는 좋은 시절 다 놓친다고 마음 고쳐먹기를 권하고 있다. 그렇지만 "처녀"는 "그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변심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김기림은 그와 같은 상황을 "고전적인 처녀가 있는 풍경"이라고, 즉 "처녀"와 같은 고전적 정조관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림은 그와 같은 주장을 직접적인 감정으로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내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면이 바로 기존의 낭만주의 작품에서 보여준 센티멘털리즘이나 카프 문학에서 보여준 지나친 내용주의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 이처럼 김기림은 여성의 정조관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보았고 또 변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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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 연구총서 47『여성성의 시론』에서/ 2017.1. 25 발행

  *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론집『한국 민중시 문학사『여성시의 대문자』등 다수, 편저 『박인환 전집』『김명순 전집-시, 희곡』외, 공편『김후란 시 전집』등, 시집『먼 길을 움직인다』『기룬 어린 양들』등. 현직 안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