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에게는 싸우는 힘이 있었다
김종연
내 연민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
내 영혼은 고통에 잠길수록 맑다
한때 나는 내게서 슬픔이 모두 사라진 줄 알았으나 이제는 내가 슬픔
에서 잠시 떠나왔다는 걸 알았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기뻐
지구라는 별에서 다른 별을 볼 수 있다는 것
나와는 다른 한 사람의 세계가 그리도 장황하게 요약되어 있었다는
것
나의 슬픔처럼
알록달록한 알약처럼
그 안에서 쏟아지는 포근한 겨울처럼
겨울을 버티면 한 해를 더 살 수 있다는 말처럼
자꾸 잠이 오고
생각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꿈에서도 슬픈 생각밖에 나지 않아 펑
펑 울다가 깨어나지만
나는 여전히 이다음의 세상이 너무 좋아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것
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삶이 거기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
다
아픔이 아픈 사람의 몫이 아닌
의사는 또 웃으며 감기약을 지어주고 말겠지만
그걸 먹어도 아픈 데는 낫고 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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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2017-2월호 <신작시 광장>에서
* 김종연/ 2011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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