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때 우리에게는 싸우는 힘이 있었다/ 김종연

검지 정숙자 2017. 2. 9. 21:17

 

 

    그때 우리에게는 싸우는 힘이 있었다

 

    김종연

 

 

  내 연민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

  내 영혼은 고통에 잠길수록 맑다

 

  한때 나는 내게서 슬픔이 모두 사라진 줄 알았으나 이제는 내가 슬픔

에서 잠시 떠나왔다는 걸 알았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기뻐

 

  지구라는 별에서 다른 별을 볼 수 있다는 것

 

  나와는 다른 한 사람의 세계가 그리도 장황하게 요약되어 있었다는

 

  나의 슬픔처럼

  알록달록한 알약처럼

 

  그 안에서 쏟아지는 포근한 겨울처럼

  겨울을 버티면 한 해를 더 살 수 있다는 말처럼

  자꾸 잠이 오고

  생각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꿈에서도 슬픈 생각밖에 나지 않아 펑

펑 울다가 깨어나지만

 

  나는 여전히 이다음의 세상이 너무 좋아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것

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삶이 거기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

 

  아픔이 아픈 사람의 몫이 아닌

 

  의사는 또 웃으며 감기약을 지어주고 말겠지만

  그걸 먹어도 아픈 데는 낫고 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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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7-2월호 <신작시 광장>에서

  * 김종연/ 2011년『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