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찬_우리 시대 시의 예술적 짜임과 미학적 고원들 Ⅲ (발췌)/ 바람이 불어오는 곳 2: 노춘기

검지 정숙자 2017. 2. 9. 03:00

 

 

    바람이 불어오는 곳 2

 

    노춘기 

 

 

  교회의 첨탑에서 너는 날아오른다

  상승 레버를 천천히 밀어 올린 글라이더처럼

 

  좁은 수로를 따라 수초들이 흔들리는

  청록색의 벌판이 바람을 따라

  네 몸속으로 밀려든다

 

  몸을 꺾으면 좀 더 넓은 물과

  모래톳과 물가의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높은 전선 위로

  부드럽게 방향을 돌리는 창공

 

  너의 바람이

  구름과 돌밭을 맨발로 디디며

  지상의 구름을 일으킨다

  손에 쥔 세계가 회전한다

 

  너는 세차게 펄럭이는 모자를 꽉 붙들고

 

  높은 나무 위에서 손 흔드는

  잊혀진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전문, (『서정시학』, 2016.봄)

 

 

  ▶ 우리 시대 시의 예술적 짜임과 미학적 고원들Ⅲ(발췌) _ 이찬

「바람이 불어오는 곳 2」의 예술적 짜임 관계 역시, 전지적 작가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중첩시키는 자리에서 나온다. 이 시편은 일인칭 시점의 화자를 고용하고 있을 뿐더러 화자가 제 자신의 감정과 사유와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로 명명된 타자의 그것들을 진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찰자 시점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관찰자 시점은 통상적으로 세계와 타자들의 외양 묘사의 차원에서는 구체적인 감각과 디테일들을 구비할 순 있어도, 그 내면성의 질감들을 빠짐없이 꿰뚫어 볼 수 있는 전지적 시선을 포함할 순 없다. 달리 말해, 관찰자 시점의 탄생 배경에 현대적 원근법과 과학적 표상 작용의 일상적 저변화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에 이르러 비로소 도입되기 시작한 개별자 각자의 인칭으로 분화된 시점의 제한성이 세계를 바라보는 일반적 규준이자 통념적 체계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현대인들은 원근법적 시선의 제한성을 합리적인 것이자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2」는 현대적 원근법이 일상적 차원에 유포시키는 시각 체제의 통념과 그 안정성의 장을 일그러뜨리는 전복의 힘을 행사한다. 또한 원근법이 전제로 삼는 시각적 합리주의와 과학적 표상 작용의 범주에서 시인 노춘기의 예술적 작업이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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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2016-가을호 <issue 들뢰즈>에서

 * 이찬/ 2007년 《서울신문》를 통해 문학평론 등단, 저서 『헤르메스의 문장들』『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