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권온_시적 언어의 방법적 변용(발췌)/ 카프카적인 퇴근 : 정재학

검지 정숙자 2017. 2. 7. 02:12

 

 

    카프카적인 퇴근

 

     정재학

 

 

  오늘은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서 피곤한 하루였다 일이 많은 것보다 사람

들과 부대끼는 게 더 힘이 든다 간신히 퇴근하여 버스에 오른다 뒤편에

서 우리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잘 왔다 마침 수의사가 너를 수술하

러 왔구나 가족들은 낯선 승객들과 섞여 있었지만 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집이 계속 덜컹거렸다 승객들은 인형처럼 똑같이 흔들렸다 어제

수의사에게 명치 부분이 아프다고 얘기했지만 이렇게 연락도 없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는 나를 뒷좌석에 눕히고 가슴을 절대한다 내 허파가 숨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집이 덜컹거린 탓인지 메스로 허파의 일부를 손상

시켰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폐활량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수술을 하

던 그는 전화를 받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나는 가슴이 열린 채로 따

라 내렸다 길 옆 담벼락에 무수히 많은 주사기가 박혀 있었다 나는 개가

되어 짖으며 달렸다 땅바닥에 흘린 선명한 핏자국이 지나온 길을 증명했

다 나는 파편이 되어 날리고 있었다 

      -전문, (『모음들이 쏟아진다』, 2014.)

 

 

  시적 언어의 방법적 변용(발췌)_ 권온

  '카프카적인 퇴근'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정재학의 세 번째 시집에 위치한다. 이 작품의 가치는 '카프카적인 퇴근'을 이론적으로 말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곧 이 시는 '카프카적인 퇴근'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한다. 카프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라고 해도 이 시를 읽는다면 '카프카적인' 상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시의 화자 '나'가 '카프카적인' 정황에 노출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사람' 또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 또는 '사람들'의 목록에 '우리 가족들이'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퇴근길의 버스에서 만난 '낯선 승객들'이 "인형처럼 똑같이 흔들렸다"라는 진술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감을 보여준다. '수의사'가 '나'를 수술한다는 이상한 설정에 가족들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가족들마저 '나'를 '가축' 취급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덜컹거리는 버스는 어느새 '집'이 되고, 수의사는 버스 뒷좌석에서 '나'의 가슴을 절개하고 허파의 일부를 손상시킨다. 급기야 수술 도중에 전화를 받은 수의사는 갑자기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덜컹거리는 '버스'와 무책임한 '수의사' 앞에서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완벽하게 무시된다. / 가슴이 열린 '나'가 한 마리 '개'가 되어 땅바닥에 선명한 핏자국을 흘리며 달리는 풍경은 카프카의 작품 세계와 닮았다. 타인과 단절되어 하나의 '파편'으로써 기능하는 현대인의 삶을 절묘하게 포착한 정재학에 이르러 한국 시는 카프카적인 문학 세계를 보다 엄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재학의 언어가 구축한 환상(fantasy phantasy)은 이제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시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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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17-1월호 <기획성시적 언어의 방법적 변용>에서

 * 권온/ 문학평론가, 2008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