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유성호_가파른 현재형과 맞서 고투하는 시인들의 서정(발췌)/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 공광규

검지 정숙자 2017. 2. 5. 23:39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공광규

 

 

  시골 재당숙이 혼자 살다 돌아가셨다

  집안 역사교과서 한 권이

  동네 이야기책과 지적도 한 책이

  신명꾼 하나가 사라졌다

  혈관부에 피가 돌던 굽은 나무 한 그루가

  평생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말뚝 하나가 뽑혀

  그 자리에 누웠다

  매일 아침 열리던 대문이 며칠째 닫혀 있자

  옆집 독거할머니와 회관에서 돌아오던 독거노인 한 씨가

  대문을 따고 방문을 열었다고 한다

  혼자 살다 죽으면

  칼로 배가 갈려 한 번 더 죽어야 한다며

  산비탈에 뻘건 황토 구덩이를 파놓고

  아침 일찍 대전으로 부검 받으러 떠난 시체를

  붉은 노을이 번질 때까지 기다리며 투정했다

  몸이 돌아갈 땅을 향해 자꾸 꼬부라지는 노인들

  겨우겨우 무덤 가까이에 친 천막에 올라와

  재당숙이 나이롱 뽕을 좋아하고

  '갈대의 순정'이 십팔 번이었다고 회고했다

  퇴직하고 동네에 들어와 사는 타지 출신 중늙은이 몇과

  시골노인들이 보는 앞에서

  관을 들고 비탈에 올라가

  멀리 청태산 낙타봉을 좌향 삼아 묻었다

  동네 회관에 내려와 저녁 먹고 술을 나누는데

  까마귀가 며칠을 재당숙네 집 주위를 돌며

  맑게 울었다고 한다

  노인들은 까마귀가 영물은 영물이라고 칭찬하였다

  어쩌면 재당숙은 까마귀 까만 등을 타고

  먼 하늘로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전문, 『문학선』2016. 겨울호

 

 

  가파른 현재형과 맞서 고투하는 시인들의 서정(발췌) _ 유성호

  제목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이 시편은 홀로 외롭게 돌아가신 '재당숙'의 행장(行狀)을 담고 있다. 혼자 살다가 외로운 죽음을 맞은 '시골 재당숙'은 세밀한 '집안 역사교과서'였고, 풍부한 '동네 이야기책'이었고, 훤한 '지적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을 누릴 줄 알았던 '신명꾼'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분은 "혈관부에 피가 돌던 굽은 나무 한 그루"로, "평생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말뚝"으로 비유된다. 그런 그분이 말없이 사라진 것이다. 옆집 노인들이 그분의 죽음을 발견하였고, 바로 그분의 부검과 장례와 그분에 대한 회상이 이어졌다. 시인은 '까마귀'가 장례 후 며칠 동안 재당숙네 집 주위를 돌며 맑게 울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는다. 어쩌면 노인들 말씀처럼 '영물'인 까마귀가 재당숙을 등에 태워 먼 하늘로 올라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라지면서 사라짐의 잔상을 남긴 그분의 모습이 희미한 채로 압도적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으뜸 인상은 '속도'를 둘러싼 어떤 격변의 이미지일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초고속 변화를 치러낸 우리는, 그 속도에 정비례하여, 오랜 경험과 감각 속에 보석처럼 존재하던 가치들을 낡고 쓸모없는 것들로 변모시켜갔다. 그 결과 이제는 새로움 그 자체가 물신화되는 차원에까지 이르렀고, 우리는 중장기적 비전이나 계획보다는 단기적 패러다임의 숨 가쁜 교체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새겨왔던 것들은 자신만의 문양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그 사라짐의 위의(威儀) 속에 위안과 치유 그리고 저항과 창조가 다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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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2017-2월호 <이달의 문제작시 부문>에서   

 *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평론집으로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침묵의 파문』『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