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이건청

검지 정숙자 2017. 2. 3. 23:00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이건청

 

 

  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쫓거나

  주금씩 발을 옮겨 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들을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크고 넓은 등허기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무대로 뛰어내렸다가 휘익 몸을 날려

  말 잔등에 올라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곡예사는 채찍으로 말을 내리쳐

  박수 소리에 화답해 보였다.

 

  곡예사가 떠나고 다른 곡예사가 와도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쳤다.

  말은 매를 맞으며 곡마단을 따라다녔다.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쫓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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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에서/ 2017.1.25. <서정시학>펴냄

  * 이건청/ 경기 이천 출생, 1967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이건청 시집』『굴참나무 숲에서』외 다수, 기획시집 『로댕- 청동시대를 위하여』등, 시선집 『이건청 문학선집』(전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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