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햇빛의 책방/ 오정국

검지 정숙자 2017. 1. 13. 01:28

 

 

    햇빛의 책방

    -내설악일기(日記) · 13

 

     오정국

 

 

  테두리 없는 햇빛의 책방이었다

 

  내 면상을 꿰뚫듯이 올려다보는 얼음장들, 새가 날지 않

는 물밑이니, 물고기가 돌아다녔다 어떤 맹목이 저리 맑은

것인지, 한번은 얼음 강을 건너가고 싶었다

 

  고요를 파고드는 회오리처럼

 

  새가 날았다 가녀린 발목에 얼음 붕대를 감고, 늦추위를

껴입고, 짝짝이 양말을 펄럭거리듯 다리목을 건너갔다

 

  유리컵의 버들강아지가

  겨우겨우 눈을 틔우기 시작했다

 

  강줄기 한복판의 얼음장이 가장 시퍼랬다 거기서 누가

수심을 잰 듯, 나무 막대기가 수직으로 꽂혀 있었고, 그걸

꽂아 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모서리 없는 햇빛의 책방이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냉연함과 팽팽함이 가득한 이 시의 회화적 중심은 "얼음 강"이 될 것이지만 그 테마적 중심은 "맹목"에 있다. 회화적 중심과 테마적 중심이라는 개념은 본래 츠베당 토도로프가 17세기 네델란드 장르화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것이다. 그는 그림에 따라 양자가 일치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데, 그 관계의 다채로운 양상이 회화를 변주하면서 시각적 리듬감과 사유의 깊이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는 오정국의 이번 시집은 비슷한 맥락에서 언어적 시계(視界)를 떠올리게 한다. / 겨울이 가고 봄기운을 막 입은 사물들이 제각기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즈음의 풍경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시집에서 가장 수일한 시편 중 하나이면서 시집 전체의 주제 의식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한겨울처럼 꽝꽝 얼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것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옅게 얼어 있는 겨울 강 위로 햇볕이 내리쬔다. 새들은 "늦추위" 속 하늘을 날고 유리컵에 담아 둔 버들강아지는 이제 막 싹눈을 틔운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관찰에 기초한 이 시는 근경과 원경을 뒤섞는 충실한 풍경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강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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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눈먼 자의 동쪽』에서/ 2016.12.29. <(주)민음사> 펴냄

  * 오정국/ 1956년 경북 영양 출생, 198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파묻힌 얼굴』등, 지훈문학상 · 이형기문학상 수상, 한서대 인문사회학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