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아
고종목
몸에서 조각을 하나씩 떼어낸다
숨 가쁜 지퍼가 한 호흡씩 이빨을 튕기며
명치에서 배꼽까지 가슴을 열어보인다
흉부 좌우로 줄지은 바늘이 어둠 속에서 반짝 눈 뜬다
부리 긴 새의 눈에 빛이 꽂힌다
침묵을 깨고 나온 바늘의 문장을
온갖 새들이 물어다 숲에다 풀어놓는다
조각 F 꽃이 숲이 되어 환하다
조각 B 나비가 숲이 되어 춤을 춘다
조각 D 이슬이 되어 숲을 적신다
화석이 된 바늘의 역사를 모래가 쓰고 바람이 지운다
잘라낸 고흐의 귀를 베토벤의 귀에 접속한다
토막 난 소리가 계단에 떨어져 구른다
구를수록 베토벤의 선율이 빨라진다
실밥 터진 구멍으로 바람 빠진 소리가 새어나온다
얼굴 없는 한 조각 푸른 기억을 밤안개로 덧칠한다
및을 먹은 X-ray 한 장 펄럭인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포스트휴먼은 휴머니스트 기존 전통과 사고방식을 파기하는 해체이론을 통해 형이상학적 권위, 합리적 사고에 반대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주체의 해체를 지향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허무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보다는 새로운 후기 형이상학적 주체의 세계를 여는 것으로서 인간 중심적 주체를 파기하고 또 다른 주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 그래서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은 본래 사이보그라 주장한다. 이는 생물학적 몸에 대한 도전이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구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신체와 이미지,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자연과 문화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사이보그가 되고 인간은 기계와의 합일을 통해 신의 영역에 도전하다. / 이런 과정을 통해 그동안 인간의 저편으로 물러나야만 했던 '비인간'의 범주에 속했던 존재들이 인간의 범주로 돌아오거나 인간과 동일한 위치로 격상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미 기존의 '인간'의 개념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동안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저편에서 차별받았던 여성들이나 유색 인종 더 나아가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까지를 하나의 동등하고 단일한 주체 개념 속으로 묶어내는 것이 그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동등하고 단인한 새로운 형태의 주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기존의 전통적 휴머니즘에서 정의해왔던 주체 개념을 해체함으로써 수평적 주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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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조각놀이』에서/ 2017.1. 5. <글나무> 펴냄
* 고종목/ 개인 정보 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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